하태경이 쏘아올린 험지 진출론, 민주 ‘비명 솎아내기’ 도구로 활용되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부산 해운대갑에서만 3선을 지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돌연 내년 총선 출마지를 ‘험지’ 서울로 지목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와 맞물려 수도권 위기론이 재부상하자 당내 3선 이상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출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친명(친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당내 중진들이 기존 지역구를 내려놓고 험지 출마로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의 당무 복귀가 임박한 시점에 체포동의안 가결파에 대한 ‘계산’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친명계가 이같은 험지 출마론을 매개 삼아 가결파로 지목된 비명(비이재명)계 압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중진 의원 중 상당수가 비명계인 만큼, 친명계가 이들에 대한 당 차원의 노골적 징계보다 험지 출마 요구를 통해 우회적으로 축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3선 하태경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총선에서 제 고향 해운대를 떠나 서울에서 도전하겠다”며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를 위해 저의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고 밝히며 선거철 단골 의제인 ‘험지 출마론’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여야 정치권에선 그간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풀뿌리 지역구에서 3선 이상을 지낸 중진 의원들을 향한 험지 출마 요구가 솟구쳤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재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험지 출마를 꺼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 의원은 여야 중진 중 처음으로 험지 출마를 선언하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의도 정가에 충격파를 불렀다. 그는 서울 출마를 선언하며 “내년 집권 3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려면 22대 총선에서의 승리가 절실하다. 국정에 무한 책임이 있는 집권당부터 변화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정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드려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선의원 시절 동일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 법안을 공동 발의한 바 있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신인 정치인들이 많이 들어와야 정치도 발전할 수 있다”라며 “작은 실천이 집권 여당의 책임정치 회복과 우리 당 총선 승리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험지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하 의원의 서울 출마 배경을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하 의원이 당내 비주류인 비윤(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만큼, 당 공천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험지 출마 카드를 꺼내들며 자신의 효용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또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과 용산 대통령실 참모진인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이 국민의힘의 강세가 두터운 해운대갑 지역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하 의원이 용산발 공천 지령에 자신이 3선을 지낸 텃밭에서 내몰리는 모양새를 피하면서도 기왕 선당후사 명분까지 챙겨가는 궁여지책을 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친명, 험지 출마 요구로 비명 찍어내기 우회?     

하 의원이 쏘아올린 험지 출마론은 민주당 주류인 친명계의 이해관계와도 상당부분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 초선 의원 등 친명계를 중심으로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 의제가 재부상하면서, 비명계 중진을 향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체제가 들어선 이후 줄곧 친명-비명 갈등으로 점철된 내홍에 진통을 앓아 왔다. 이러한 당내 불협화음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국회 가결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민주당에서 30여 명에 이르는 이탈표가 있었을 것으로 추산되며 이탈표의 주역으로 비명계가 0순위로 지목됐다. 이에 강성 친명계와 당원들을 중심으로 가결파 색출에 이은 ‘비명 숙청론’이 들끓었다. 

지난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를 계기로 이러한 내분 기류가 다소 잦아들었다고는 해도 비명계를 향한 친명계의 반감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이에 이 대표의 당무 복귀를 기점으로 비명계에 대한 처분 논의가 재차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대표나 친명으로선 보궐 직후 비주류 그룹을 노골적으로 숙청하는 분위기로 몰아갈 경우 보궐 승리로 모처럼 환기된 당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 비명계 처분에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아직 이 대표가 당무에 복귀를 하지도 않았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갓 끝난 시점인데 비명계 징계 등 처분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면서 “일단은 보궐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대여 공세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집안 이슈는 나중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친명 일각에선 보궐선거를 전후해 험지 출마론을 띄우고 나섰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최근 하 의원의 서울 출마를 ‘혁신 행보’라고 추켜세우며 “우리 민주당 중진들의 보신주의에 대해 국민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 경쟁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김 의원은 홍익표 원내대표가 자신의 텃밭 지역구를 떠나 민주당의 험지인 서울 서초을 출마를 결심한 사례를 언급하며 “3선 이상 다선 의원들이 험지 충청이나 영남으로 옮겨서라도 당에 헌신해야 한다. 호남도 대대적으로 혁신 공천을 해야 내년 총선에 승리하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비명계 중진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여기에 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혁신회의’도 최근 홍 원내대표 취임을 계기로 ‘공천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3선 이상의 중진 험지 출마를 요구한 데 이어, 보궐선거 이후에도 공천 혁신 의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앞서 지난 7월에도 당내 ‘중진 현역 물갈이’를 주장한 바 있다. 

아울러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당내 강경파 초선들을 중심으로 ‘3선 연임 초과 금지’와 함께 중진을 향한 험지 출마 요구가 스멀스멀 분출하는 상황이다. 친명계 초선 의원은 “반드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동일 지역구에서 3선 이상 연임을 한다는 것은 구태 정치이자 알박기 정치”라고 당내 중진들을 겨냥했다. 

이에 민주당 비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송갑석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비명, 친명 갈라서 이용할 만큼 당 상황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라며 여야를 관통한 험지 출마론이 당내 특정 계파를 겨냥한 ‘공천 횡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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