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레드카펫’ 깔아주기 나선 친명, 구 당권파 찍어내기 본격화

이재명 민주당 대표(좌), 문재인 전 대통령(우)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좌), 문재인 전 대통령(우)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주류인 친명계가 ‘원칙과상식’ 3인방의 탈당 후 당내 비주류 잔여세력 정리에 나선 모습이다. 22대 총선 공천을 교두보 삼아 이재명 대표와 그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이른바 ‘친명 순혈주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현 지도부 퇴진을 주장했던 비명계 주축 인사들이 제3지대로 이탈하자, 이내 친명계는 구 당권파인 문재인계를 직격하기 시작했다. 친명계 인사들의 친문 지역구 출마를 신호탄으로, ‘반문(反文)’ 출신 이언주 전 의원을 향한 이 대표의 복당 러브콜이 이러한 기류에 방점을 찍고 있다. 비명계 탈당러시 이후 잠잠해질 것으로 보였던 민주당 권력 암투가 재점화될 전망이다.

22대 총선시계가 빨라진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 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 등 비주류 세력의 탈당과 동시에 짜여진 듯 친명계의 친문 압박이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로 당내 주류인 친명 인사들이 속속 친문계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는 등 ‘친명 공천’ 밑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 대표가 직접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언주 전 의원에게 복당 요청을 한 것은 당내 주류를 향한 ‘비주류 정리’ 특명으로 읽혔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총선을 75일 앞둔 지난 25일 당 로고를 기존 파란색 단일 배경에서 파란색, 보라색, 녹색 등을 3분할한 배경으로 전격 교체했다. 이는 ‘문재인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으로도 불리는 ‘이니블루’를 대폭 줄인 것으로, ‘문재인 삭제’라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친문계 의원은 “시대 흐름에 따라 권력도 바뀐다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라며 “민주당에서 과거 권력의 흔적을 지워내겠다는 의미이고, 지금의 주류 정당으로 정체성을 새롭게 가져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봤다.

이에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이날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장윤미 총선기획위원은 “문 전 대통령의 색을 지운다거나 이런 의미는 전혀 없다”라며 “무언가를 배격하는 색깔이 아니라 오히려 포용하는 색깔”이라고 의미부여를 경계했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 [뉴시스]
전해철 민주당 의원 [뉴시스]

親文 지역구, ‘친명 잠식’ 가시화...‘이재명 레드카펫’ 윤곽

다만 이러한 해명이 무색하게도 같은 날 친명계로 분류되는 이연희 민주연구원 상근부원장이 친문 3선 도종환 의원의 지역구인 충북 청주흥덕에 출사표를 던졌다. 도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 이사를 맡고 있다. 당초 서울 동작을을 출마지로 지목했던 이 상근부원장은 당 검증위 심사까지 마친 상황에서 돌연 도 의원 지역구로 급선회했다. 동작을 현역인 강성 친명계 이수진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의 리턴매치로 프레임이 굳어진 동작을을 우회하자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저격 출마’라는 해석이 잇따른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이수진 의원(비례대표)도 당초 서울 서대문갑에 출사표를 냈지만, 전략선거구 확정에 출마 의사를 접고 비명계임에도 당에 잔류한 윤영찬 의원의 지역구(성남 중원)로 기수를 돌렸다. 윤 의원은 당에서 손꼽히는 비명계 인사로, 과거 문재인 대선캠프 공동본부장과 문재인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바 있다. 이 의원은 성남 중원 출마 기자회견에서 “성남은 이재명 대표의 심장이자 차기 대선 승리의 발판”이라며 “성남을 지키는 것은 민주당을 지키는 것이고 이 대표를 지키는 것”이라고 출마 일성을 냈다.

‘친문 3철’(전해철·양정철·이호철)로 일컬어졌던 전해철 의원도 친명의 지역구 공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친명계 양문석 전 통영고성 지역위원장이 전 의원 지역구인 안산 상록갑에 도전장을 내면서다. 전 의원은 문재인 대선캠프 특보단장, 문재인 정부 행안장관 등을 역임한 ‘찐문’(眞文)이다. 양 전 위원장은 과거 전 의원을 ‘수박’(비명계를 비하하는 은어)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가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3개월의 당직정지 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을 정도의 강성 친명계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좌),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우) [뉴시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좌),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우) [뉴시스]

친문 뿐이랴, 586도 아웃! ‘친명 순혈주의’ 부상  

친명계의 친문 지역구 공습러시는 서막에 불과하다. 민주당 주류의 공천 전 내부 교통정리는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친문과 함께 민주당 뿌리세력으로 자리매김했던 586운동권이 또 하나의 ‘뺄셈 퍼즐’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운동권 맏형 격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되며 재판에 넘겨진 것이 직격탄이 돼 최근 친명계를 중심으로 ‘586 손절론’이 거세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윤용조 전 당대표실 부국장은 최근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청와대에서 요직을 지냈던 임종석‧노영민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이인영 의원 등을 거론하며 “이번 총선 목표가 개인의 권력 유지가 아니라 당의 총선 승리라고 생각한다면 물러서는 것이 맞다”며 용퇴를 권고했다. 

일찌감치 ‘친명 버스’에 몸을 실은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장외에서 당내 교통정리에 힘을 싣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임종석·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정치적 양심이 실종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끝도 없이 힘을 주고 방치했다. 이 와중에 책임을 지고 석고대죄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두 비서실장이 총선에 나온다고 한다”고 날을 세웠다. 현 정권 출범의 발로가 된 윤석열 검찰총장 발탁의 ‘원죄’가 전 정부에서 고위 인사검증 총책을 맡았던 두 사람에게 있다는 논리다. 임 전 비서실장은 서울 중구 성동갑에, 노 전 실장은 청주 상당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치고 당 심사까지 거친 상태다.

나아가 이재명 체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조정식 사무총장도 친명 원외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의 총선 불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조 사무총장은 이해찬계 출신으로, 친명 핵심으로 거듭났다지만 친명의 근간을 이루는 ‘성남계’와는 뿌리가 다른 만큼 당내 권력흐름과 동행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온다. 특히 공천 실권을 행사한 그가 이 대표 최측근인 정의찬‧강위원 당대표 특보,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총선 조기낙마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은 더민주의 불출마 요구 명분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언주 전 의원 [뉴시스]
이언주 전 의원 [뉴시스]

무엇보다 민주당 ‘공천 필터링’ 대물결의 방점을 찍은 것은 이재명 대표다. 이 대표는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메인스트림이었던 친문과 틀어진 뒤 국민의당으로 이적한 바 있는 이언주 전 의원 영입에 나섰다. 26일 현재 이 대표와 이 전 의원 양측은 복당 논의를 위한 회동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22대 총선 공천을 교두보 삼아 비명‧친문 등 당내 비주류를 전면 퇴출하겠다는 이 대표의 의중이 담겼다는 것이 정가 중평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흔히 공천 국면을 앞두고 정당 내 비주류 솎아내기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 자연 수순이긴 한데, 민주 친명계의 최근 행보만 보면 비명‧친문 퇴출 후 ‘찐명 가리기’로 이어지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며 “(민주당) 공천 전후로 탈당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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