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때리기'에 與·野 따로 없다
한동훈 "586 청산이 시대정신"
친명(親明) "국민은 선수교체 원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린 "함께하는 대학생의 미래"를 주제로 대학생들과 간담회 시작 전 전달받은 '대학생 공약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586용퇴론'의 단짝은 '이번엔 다르다'다. 선거철이면 휘몰아치는 '세대교체론'의 바람은 선거가 끝나면 잠잠해진다. 그리고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찾아와 "이번엔 다르다"고 말한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86세대는 다시금 위기를 맞았다. 여·야 안팎으로 십자포화를 당하는 중이다. 이번엔 다를까.

안팎으로 치이는 86세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더불어민주당의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세대를 겨냥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민주당을 숙주 삼아 수십 년간 386,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운동권'이란 단어를 7번이나 사용했다. 급기야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하라는 강력한 시대정신"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그 뒤 한 위원장은 "(운동권을) 대체할 실력과 자세"를 강조하긴 했으나, 취임사의 방점은 운동권 청산이었다. 

한 위원장의 586용퇴론은 실질적인 총선 행보로도 나타났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저격했다. 이날 한 위원장은 "개딸 민주주의,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정치, 이재명 개인 사당화로 변질된 안타까운 정치를 상징하는 의원이 정청래"라며 김경율 비대위원을 상대로 내세웠다. 역설적으로 이날의 행사는 여권 내부의 후폭풍을 키우기도 했다. 

한 위원장의 운동권 청산 구호에 탄력을 받는 쪽은 서울 동부벨트에 출마하는 국민의힘의 3040 주자들이다. 이재영(강동을)·이승환(중랑을)·김재섭(도봉갑) 전 당협위원장은 국민의힘의 험지인 서울 동북권에 출마한다. 3040세대인 이들은 일찌감치 민주당의 86세대를 대체하는 세대교체론을 앞세워 22대 총선을 준비 중이다. 

이재영 전 위원장이 도전장을 낸 강동을의 현역은 이해식 민주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80년대 서강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 인사다. 이승환 전 위원장은 박홍근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중랑을에 도전한다. '586 막내'인 박 전 원내대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의장대행을 지냈다. 김재섭 전 위원장은 인재근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도봉갑에 출마한다.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인 인 의원은 운동권의 대모로 불린다. 

나아가 국민의힘의 3040 주자들은 '이기적 정치:86 운동권이 뺏어간 서울의 봄'이란 책을 출판하고 북콘서트를 합동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재영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4일 북콘서트에서 "조국으로 대표되는 86세대의 위선을 이제는 몰아내야 하는 시대"라며 "그들이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괴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친명(親明) "과감한 선수 교체 필요, 586 결단해라"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2대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내부에서 분출되는 586 용퇴론도 만만치 않다. 다만 당 지도부는 인위적인 세대교체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상황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586용퇴론에 대해 "'586세대' 정의에 해당하진 않지만 나도 586이다"라며 "(민주화) 운동한 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잘라야 할 이유인가"라며 "잘라야 할 586에 대한 정의도 정해진 게 없지 않나"고 말했다. 

아울러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도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3선 이상, 올드보이, 586 세대' 등 카테고리를 만들어 (경선 시) 감점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임 위원장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지지불태'(知止不殆·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를 인용해 "스스로 생각해서 국민의 선택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자발적으로 후진을 위해서 물러서 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날 임 위원장은 586운동권의 자발적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당내 운동권 출신 현역의원이 불출마도 이어지는 중이다. 그간 586세대 중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은 우상호 민주당 의원(4선)이 유일했다. 우 의원은 지난 2021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며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뒤 586세대인 김민기 민주당 의원(3선)이 지난 19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오늘날 정치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불신에 책임을 통감하고, 새롭고 다양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서 전대협 1기 사무국장 출신인 최종윤 민주당 의원(초선)도 지난 22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만 최 의원은 586용퇴론에 대해 "지역·세대 등 일정한 네트워크에 프레임을 씌운 (용퇴론은) 맞지 않다"며 "(특정 세대가) 후진적 정치의 근본적 원인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가 주축이 된 원외 친명계(친이재명계) 인사들은 연일 전대협 출신 선배 세대를 향해 자발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총련 출신이자 친명계인 윤용조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서실 부국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노영민, 임종석, 이인영 세 분의 용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 전 부국장은 "지난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이셨던 임종석, 노영민 두 분이 출마하시면 국민이 검사 독재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가 아니라 전 정부와 현 정부의 대결처럼 보실 수 있다"며 "전대협 1기 의장으로 86세력의 맏형이시고 이번에 출마하시면 서울 구로구에 7번째 출마가 되는 이인영 의원님도 마찬가지"라며 "2000년 출마 이후 24년 동안 구로구의 주민들은 이인영이 곧 민주당이었다. 이제는 새 인물로 다른 비전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새로운 인물들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어떤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명계 원외 조직인 민주당혁신행동도 지난 21일 '현역 운동권은 프리패스? 도덕성의 잣대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전대협 출신인 기동민·송갑석·윤건영 민주당 의원을 직격했다. 이들은 "기 의원은 고가의 양복을 받은 ‘비위’를 저질렀음에도 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윤 의원은 국회의원실에 '허위 인턴'을 등록한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구형받았고, 또 음주와 사기 전과에 '공천 장사' 의혹이 보도된 송 의원은 어떤가, 모두 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원외 친명계의 대표주자들은 잇단 논란에 휩싸여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한총련 의장 출신이자 친명계인 강위원 민주당 당대표 특보는 성비위 논란이 불거져 출마를 포기했고, 한총련 산하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 출신이자 친명계인 정의찬 민주당 당대표 특보도 과거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논란이 일자 총선 불출마를 결정했다. 

與·野 586 때리기에 임종석 '고군분투' 

임종석 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뉴시스]

586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임종석 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치권의 586 때리기를 막아내는 중이다. 22대 총선에서 중구·성동구 갑에 출마하는 임 전 비서실장은 지난 1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586세대를 직격한 한 위원장을 향해 "한 위원장이 92학번인 것 같다"며 "그리고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 바로 고시공부를 한 거 아닌가. 저는 동시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과 선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 위원장도 지난 22일 "1980년 광주항쟁 때 유치원 다녔다. 누구한테 미안해해야 하나"며 "우리 세대는 열심히 살았고, 그런 식의 도덕적 훈계를 들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임 전 비서실장은 민주당 내 용퇴론에 대한 반박도 이어갔다. 임 전 비서실장은 지난 2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특정 세대가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것도 뺄셈정치로 가기 때문에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첫 번째 대의와는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뺄셈정치가 지속될 경우 제3지대로의 탈당 행렬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임 전 비서실장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이해관계도 있지만 감정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우리 정치권에서 제일 중요한 책임 중에 하나가 언어 선택과 태도"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