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가마솥, 부안 채널문자 등 실패 사례 다분
문화예술진흥법, 조형물 설치 필수사항으로 적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조형물 HELLO. [박정우 기자]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조형물 HELLO.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인천공항공사가 조형물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아트포트(Art+Airport) 개념’을 도입하며 예산 183억 원을 투자했으나, 미술품 ‘HELLO’가 설치된 6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비판을 받는 상황. 이어 전국적으로도 방치 조형물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며, 괴산 가마솥, 부안 채널문자 등이 지목되기도 했다. 각 지자체의 랜드마크 사업에 대한 여론이 싸늘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시민들과의 적절한 논의와 투명한 예산 운용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제2여객터미널 개장 당시 ‘아트포트(Art+Airport) 개념’을 도입한다며 아트프로젝트 46억 원, 건축물미술작품 37억 원, 미디어 아트워크 100억 원 등 예산 183억 원을 소요했다,

최근 아트포트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미술품 ‘HELLO’가 설치된 지 6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방치됐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공항공사는 HELLO 설치 당시 한글 자음과 모음 형상의 LED 유닛 1000여 개로 광화문을 비롯해 에펠탑 등 세계 각국 랜드마크 형상을 표현하는 모빌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설치미술품 ‘HELLO’ 무슨 문제가 있을까

지난 6일 취재진이 방문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상층부에는 조형물 HELLO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HELLO의 설계 시 의도대로 상·하로 동작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 표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LED 유닛 모형의 색상이 바뀌는 정도에 그쳤다. 이에 여전히 일각에서는 억대에 달하는 조형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입을 모아 제작비를 지적했다. 출국 대기 중인 60대 여성 A씨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눈길을 끌지도 않는 조형물에 큰 돈을 사용했다는 게 참 낭비 같다”라고 말했다. 20대 남성 B씨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줄 몰랐다”라며 “그냥 LED 전구인 줄 알았다. 취지가 무색해 투자한 돈이 아깝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미관상 보기 좋다는 평가도 있었다. 30대 여성 C씨는 “제작비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관람하기에는 좋은 것 같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같다”라며 “국제적인 공항인 만큼 미관에도 어느 정도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 고장 논란에 “안전점검 및 보강”

같은 날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HELLO 조형물 설치 및 투자 비용에 대해 “2017년 12월20일에 설치가 완료됐고, 제작비는 7억8300만 원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언론에는 수십억 원으로 보도된 상황이다.

HELLO 조형물의 잦은 고장과 관련해서는 “2022년 12월에는 자체 안전점검을 실시한 것이고, 그 이후 시설물 일부 구조 보강이 필요해 구조전문가 자문 및 설계 후 보수 공사를 시행한 것”이라며 “지난해 12월 보수가 완료됐고 안전 보강 금액은 1억1000만 원이 소요됐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2017년 설치 이후 올해까지 LED 이색 및 소등 등의 경미한 보수 사항을 발견했다”라고 덧붙였으며 “향후 인천국제공항에 확정된 조형물 설치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난해·방치 조형물 사례 잇따라

인천국제공항에 논란이 된 조형물은 HELLO뿐만이 아니다. 제1여객터미널 진입로 부근 위치한 ‘플라잉 투 더 퓨처(퓨처)’는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 조롱에 대상이 됐다. ‘미래로의 비상’이라는 뜻을 가진 퓨처는 초일류 공항으로 도약하는 인천공항의 비전을 담은 랜드마크 조형물이다.

2008년 6월에 공개된 퓨처는 길이 27m, 높이 18.5m, 폭 9m의 대형 크기로 낮 동안 축전한 태양광이 밤이 되면 LED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총 24억 원에 비용이 투입되었고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외형이 흡사 남근을 연상케 해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을 처음 접하는데 저(퓨처) 조형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난감하다”, “가족과 공항을 지날 때마다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등 평을 남겼다.

최근 논란이 된 충북 괴산군의 ‘괴산 군민 가마솥(가마솥)’은 5억 원을 들였지만, 의미를 상실한 채 방치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마솥은 지름 5.68m, 둘레 17.8m, 두께 5cm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제작에 들어간 주철만 43.5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마솥은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기네스북에 도전하기 위해 2005년 제작됐다. 하지만 18년 넘게 방치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기존 취지였던 기네스북 도전 또한 호주의 질그릇에 밀려 실패했다.

무게 때문에 솥뚜껑을 여는 데만 4000만 원이 들고, 녹슬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서 한 해 들기름 값만 1000만 원이 소요되는 실정이다. 이어 크기 때문에 열 전달이 잘 이뤄지지 않아 가마솥으로써 활용도 어렵다.

2011년과 2017년에는 가마솥 활용 방안과 관련해 지역 관광명소인 산막이옛길로 옮기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동에만 2억 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해 무산됐다. 지난해 8월에는 충북도청이 330만 원을 내걸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마솥 관광자원화 활용방안 공모전’을 개최했으나 반영된 아이디어는 없었다.

녹슨 조형물 방치부터 흉물 비판까지

전라북도 부안군은 2016년 부안의 초입인 서림교차로 인근에 ‘BUAN’이라는 채널문자 조형물을 설치했다. 부안 관문에 지역 상징성을 부여한 채널문자를 설치해 관광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부안군은 최초 설치 당시 스틸스프레이와 우레탄페인트 등으로 도색해 녹이 잘 슬지 않는 조형물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설치 2년 만에 도장공사를 진행하는 등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이다. 제작비로는 총 1억 원가량이 소요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설치 당시 부안군은 채널문자 인근에 담쟁이 넝쿨을 식재해 자연스럽게 감기면서 자연과 어우러지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름철 철근의 복사열과 함께 야관 경관조명으로 인한 열로 넝쿨은 자라지 못했다.

2016년 강남 코엑스 앞에 설치된 황만석 작품의 ‘강남스타일 청동상’은 높이 5m, 폭 8m에 달하는 조형물로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춤 동작을 표현했다. 당시 강남구는 “런던 피커딜리 서커스,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에는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담은 랜드마크가 있다”라고 조형물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 청동상은 대중들에게 대표적인 흉물로 꼽히며 여전히 “세금을 낭비했다”, “잘린 손목 같다” 등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전국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은 집계된 것만 2만여 개에 달하며, 파악이 불가능해 방치된 조형물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 건물 앞 조형물도 마찬가지다. 공공조형물 설치는 건물주의 선택이 아닌 법으로 지정된 필수사항이다. 1995년에 시행된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의해 총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0.7%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예술 진흥, 랜드마크 선정 등을 위해 각종 조형물이 설치되고 있지만, 실효성과 관리 부분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자리 잡는 상황. 일각에서는 소수의 권한으로 조형물이 설치될 것이 아닌 시민들과의 적절한 논의를 통해 투명한 설치비 운용과 명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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