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속 여·야 결집, 이어지는 공방전
“김대중, 이승만, 이미 역사적 평가 끝나”

건국전쟁 포스터. [뉴시스]
건국전쟁 포스터.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총선이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과 이승만 대통령을 다룬 ‘건국전쟁’이 연일 입방아에 오른다. 지난해 1212 군사 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의 열기가 식기도 전이다. 역대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극장가를 휩쓴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관람 인증’, ‘관람평’ 등을 공개적으로 남기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지지층 결집 도모를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건국전쟁’이 1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고,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건국전쟁’에서 민간인 학살 내용이 빠진 것은 의도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두 영화가 정치적 목적으로 개봉됐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건국전쟁’ 관람 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고,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황당무계한 주장에 동참”이라고 비판했다.

길위에김대중 포스터. [뉴시스]
길위에김대중 포스터. [뉴시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민심 잡기’ 열기가 극장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1212 군사 반란을 담은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에 성공하며 열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길위에 김대중’이 개봉됐다.

지난 2월에 개봉한 ‘건국전쟁’은 김덕영 감독이 2021년부터 3년 동안 걸쳐 만든 작품으로 이승만의 생애와 정치 행보를 내용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은 초·중·고 필수교육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업적을 선보이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1월에 개봉한 ‘길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부터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아카이브 자료와 최초 공개 자료, 인터뷰 등으로 전개됐다.

이승만과 ‘건국대전’, 정치권 말·말·말

‘건국대전’은 이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자는 여권 주도로 관람 독려가 이뤄졌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4·19혁명으로 이어진 1960년 3·15부정선거 등의 오점을 측근들의 욕심으로 비췄다며 이 전 대통령의 과오를 축소하고 미화했다는 평도 나왔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영화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로 쫓겨난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에 현직 대통령이 동참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통해 “영화감독들이 쓸데없이 이런 영화 좀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며 “‘건국전쟁’이라 (제목을) 붙였는데, 역사 수정주의다. 헌법에 4·19 정신이 명시됐다. 반헌법적 일들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치권 인사들은 ‘관람 인증’을 통해 ‘건국전쟁’ 흥행에 힘을 보탰다. 

한 위원장은 지난 2월12일 영화 관람 후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데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며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 계시지 않았다면 혹은 초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와 우리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며 국운이라는 것을 실감했다”라고 말했다.

‘길위에 김대중’, 결집한 야권

‘길위에 김대중’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과 생애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과 이를 공감하는 2030세대 관객이 주를 이뤘다. 영화를 관람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정말 큰 거목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바꿔 오신 삶을 잘 조명했다”라고 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 더불어민주당 양산 지역 당원 200여 명과 함께 단체 관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장례식장날 권양숙 여사 앞에서 오열했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가슴에 가장 간절하게 남아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민주주의, 민생경제, 남북 관계 3대 위기를 통탄하면서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돼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강기정 광주시장, 김관영 전북지사 등도 영화를 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길위에 김대중’의 개봉 시기가 총선 3개월 전인 것을 두고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왔다. 이에 민환기 감독은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정치인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헤쳐 나갔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신념이나 이상 같은 걸 잃지 않고 실현했는지를 보여주려는 다큐멘터리”라고 일축했다.

이어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읽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러나 이 작품의 초점은 정치가 아닌 김 전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돌이켜보는 평전이다”라고 강조했다.

‘건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빠진 건 의도적

지난 2월28일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건국전쟁이 100만 관객을 넘었다. 극장가가 불황인 시기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상당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두 영화의 양상에 대해서 “‘건국전쟁’은 그동안 우리가 오해했던 사실을 다뤘고, 그 부분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길위에 김대중’은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건국전쟁의 흥행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독재자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던 사람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기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라며 “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 지지층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측면도 작용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2월29일 “‘건국전쟁’의 가장 큰 맹점은 보도연맹 사건이 쏙 빠졌다는 것이다”라며 “이 전 대통령 집권 시기 가장 크게 저지른 민간인, 양민 학살이라는 부분을 빼버린 것은 의도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명백하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미 역사적으로 내려졌다”라며 “‘건국전쟁’을 통해 잘못 알았던 사실을 바로잡는 효과도 있겠지만, 역사를 다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매우 섣부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두 영화와 관련해서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제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생애를 걸고 만드는 작품을 정치적으로 허비하지는 않을 것. 자기 신념표출을 예술로 표현하는 셈이다. 지지층이나 정치권은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지만,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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