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세력 약화 춘추전국 열렸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세계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전국 3대 패밀리’로 불리던 범서방파, 양은이파, OB파의 활동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범서방파의 김태촌은 지난해 1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양은이파의 조양은은 지난해 11월 핀리핀에서 검거돼 국내로 압송됐다. ‘전국 3대 패밀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전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폭력 조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검찰과 경찰이 가장 주시하는 지역이 있다. 바로 부산, 울산, 대구를 아우르는 영남지역이다. 특히 부산의 칠성파는 ‘전국 3대 패밀리’ 위축 이후 가장 세력이 큰 조직으로 조직의 프랜차이즈화를 꿈꾸고 있다.

검찰·경찰 ‘제2의 범죄와의 전쟁’ 시작

120조 규모의 지하경제 양성화 목적


지난 5일 부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필로폰을 판매한 혐의로 중간 판매책 김모(50)씨 등 5명을 구속했다. 동시에 이들로부터 필로폰을 구매해 상습적으로 투약한 폭력조직 칠성파 행동대원 이모(46)씨 등 5명도 함께 구속했다. 일반 투약자 박모(33)씨 등 10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미 검거된 판매총책으로부터 올해 초 필로폰을 구입, 투약자들에게 1회 투약분량(0.03g ~0.05g)을 10만~15만 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을 사용해 필로폰 매입자를 모집해 판매했다.

마약사업은 조폭들의 주된 수익사업이다. 칠성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인천항에서 칠성파 조직원과 연계해 중국에서 필로폰을 들여오려던 운반책 하모(35)씨가 인천공항본부세관·인천본부세관 합동수사로 검찰에 붙잡혔다.

당시 하씨에게 필로폰 운반을 지시한 사람이 칠성파 조직원 방모(45)씨였다. 하씨는 12월 10일 방씨의 지시를 받고 중국 칭다오에서 현지 마약 조직으로부터 필로폰 5.7㎏을 넘겨받아 인천항으로 가지고 들어오려다 붙잡혔다.

검찰에 따르면 하씨가 들여온 필로폰 5.7㎏은 시가 190억원 상당으로 19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하씨는 특수 제작한 커피제조기 안에 필로폰을 숨겨 원두인 것처럼 속여 들여오려다 인천항 입국 검색과정에서 적발됐다.

칠성파 50년 넘는 역사 가져

칠성파는 1960년대 초 부산 중심가를 기반으로 결성됐다. 이들의 전성기는 1980년 중반 이후였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유흥·향락사업이 커지면서 업소 및 오락실 사업으로 큰 수입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모인 자금으로 부산 조폭계를 장악해왔다.

칠성파의 유일한 맞상대는 신20세기파다. 신20세기파는 칠성파보다 늦은 1980년대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 유흥가를 기반으로 구성된 부산 제2의 폭력조직이다.

두 세력의 다툼은 30여 년정도 계속돼 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93년 벌어진 신20세기파 행동대장 살해사건이다. 1993년 7월 칠성파 행동대장 등이 세력 확장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10차례 넘게 무차별 난자해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영화 ‘친구’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 속 유오성이 맡았던 배역이 칠성파 행동대장 역이었고 장동건은 신20세기파 행동대장 역을 맡았다. 이후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칠성파 실제 주인공과 조직원은 곽경택 감독을 협박해 3억 원을 뜯어내려다 공갈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칠성파는 오랜 역사를 가진 조직답게 조폭 특유의 끈끈함과 잔인함을 갖고 있다. 2007년에는 칠성파 조직원들이 서면파 조직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칠성파 조직원 김모(32)씨가 보복차원으로 같은 해 12월, 상대 서면파 조직원을 무참히 살해했다. 김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들은 조직범죄로 수감된 조직원에게는 정기적으로 면회, 수발을 한다. 하지만 자기 조직을 공격하는 다른 조직원들은 반드시 응징하고, 조직을 탈퇴·배신한 내부 조직원은 집단 폭행, 손가락 절단 등으로 잔혹하게 보복해 왔다.

두목들 구속 조직 몰락 시작

칠성파는 규모가 큰 만큼 조직의 세력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조폭의 프랜차이즈화를 이끌었다. 칠성파는 부산 각 지역의 명칭을 따서 ‘온천장 칠성’ ‘서동 칠성’ ‘기장 칠성’ 등의 이름을 붙여 조직을 키웠다. 동시에 광주 등의 폭력조직과 연합해 전국구 조직을 꿈꿨다.

그러나 조폭들도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검찰과 경찰의 끈질긴 검거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칠성파 1대 두목 이강환(72)씨는 1991년 검찰의 ‘조직폭력과의 전쟁’ 때 구속 수감돼 8년간 복역했으며 2000년에도 부산 모 나이트클럽 지분 싸움에 연루돼 구속됐다.

지난해 10월에는 2대 두목인 한모(46)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1대 두목인 이강환(72)씨로부터 조직을 물려 받은 지 2년 만이었다. 한씨 구속 과정에서 현직 경찰 간부가 수사 정보를 제공해 도피하도록 도와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기도 했다. 칠성파의 손길이 수사기관 내부로까지 뻗쳐 있었던 것이다.

신20세기파는 2006년 1월 조직원 60여 명을 동원,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해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을 벌인 사건을 계기로 조직원 대부분이 구속됐다. 하지만 최근 조직원들이 출소하면서 다시 세를 키우고 있다.

신20세기파 두목에 이어 칠성파 두목이 구속되면서 국내 폭력 조직은 변화의 바람을 맞게 됐다.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일에는 서동파 두목 서모(46)씨가 구속 기소됐다. 서씨는 1999년 1월 부산 금정구 서동에서 폭력배 30여명을 규합해 서동파를 조직했다. 폭력조직 구성 혐의로 2001년 3월 수사선상에 오르자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부두목을 포함한 조직원 20여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돼 처벌받았다. 그러나 서씨의 행방을 찾을수 없었던 검찰은 2003년 2월 내사를 중지했다.

그러던 중 검찰은 서씨가 베트남으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서씨는 범죄단체구성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이기 때문에 올 1월 시효가 끝난 줄 알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씨는 해외로 도피하거나 공범이 재판받게 되면 그만큼 공소시효가 연장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은 지난달 25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천공항에서 귀국하던 서씨를 검거했다.

동성로파 조직원 절반 이상 구속

대구에는 11개 파에 총 320여 명의 조폭이 활동을 하고 있다. 향촌동파가 75명, 동성로파 61명, 동구연합파 33명, 달성동파 17명 등이다. 모두 다 범죄단체로 분류된 폭력조직이다.

최근 지역 조폭조직은 자신들의 지역을 넘어 수도권이나 인접지역으로의 세력화를 꾀하고 있다. 지방의 경우 지역특성상 수입을 낼만한 사업거리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월 22일 대구지방경찰청 폭력계는 다른 폭력조직과 원정 패싸움을 모의한 혐의 등으로 대구지역 양대 폭력 조직 중 하나인 동성로파 부두목 박모(45)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행동대원 장모(27)씨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달아난 임모(40)씨 등 조직원 11명을 지명수배했다. 대구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동성로파 조직원 61명 중 절반 이상이 검거된 것이다.

동성로파는 포항지역 삼거리파와 해수욕장 이권을 둘러싼 다툼을 벌이던 중 회칼, 야구방망이 등으로 무장한 채 원정 싸움에 나섰다. 하지만 상대 조직이 급습 소식을 미리 듣고 자리를 피해 대형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검거로 동성로파는 사실상 와해됐다.

제2의 범죄와의 전쟁 지하금융 양성화 목적

앞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폭 척결을 향한 검경의 의지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특히 대검찰청 강력부는 2월 21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1990년 노태우 정권 당시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이다.

대검찰청 강력부는 3세대 조폭들이 형성하고 있는 대규모 지하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총력 단속을 예고했다. 또 조폭의 기반을 와해함과 동시에 기업형 조폭이 이번 지방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비해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검찰과 함께 경찰도 절도·기업형 조폭에 대해 100일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조폭과 사법당국의 전쟁이 시작됐다.

시대가 흐르면서 조폭들도 그 모습이 변했다. 1세대 조폭이 ‘낭만파 조폭’이었다면 2세대 조폭은 ‘패밀리 조폭’이었다. 하지만 3세대로 들어선 지금의 조폭은 ‘기업형 조폭’시대다. ‘기업형 조폭’은 과거의 조폭과 달리 똑똑하다.

과거 폭력 조직의 주된 수입원은 나이트클럽, 유흥업소, 오락실 운영, 건설 및 부동산 이권 개입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조직이 기업화 되고 슬림화 되면서 조폭들이 양지로 스며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주가조작이다. 조폭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식 시장을 조종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손해를 볼 경우는 잘못된 정보를 준 사람들에게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또 연예기획사를 통해 공연 수익금을 가로채거나 연예인들과의 불공정 거래로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작게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조직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다 알력싸움이 있을 경우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여기에 대학교 학생회에 스며들거나 이번과 같이 각 선거에 자금을 대며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온라인 사행산업과 사금융도 빼놓을 수 없다.

검찰은 이러한 조폭의 활동을 원천 차단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킬 계획이다. 검찰과 경찰 등 사법조직에서 파악하고 있는 지하경제 규모는 약 120조 원이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과 경찰은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단순히 조폭을 검거하거나 와해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똑똑해진 조폭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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