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조사허가 없이 유물 발굴 허락하는 대한민국

만의 하나라도 정치권 인사나 지역 인사 중에는 그 지역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문화유산의 소중함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더할 나위 없이 막중한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야욕, 지역 발전, 지역 이기주의에만 정신이 팔려 나라의 먼 미래와 문화, 진정으로 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애초부터 관심 밖인 경우가 있었다.

세종시의 문화유산을 대충이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했다면 최소한 수십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된 소중한 유적과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사적지나 기념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계획은 사전에 반드시 어디서부터 개발하고, 도시가 어떤 형태로 확장·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계획안이 필요하다. 그런 뒤 먼저 지상·지하에 있는 유적과 유물 실태조사를 위한 조사계획안을 만들어야 한다. 조사계획안 작성은 적어도 10년은 걸릴 작업이다. 하지만 계획단계부터 무엇이 그리 급한지 빨리빨리 대충대충 서둘러 해 치우고 말았다. 세종시 이외에도 개발이라는 미명과 정치가·기업가 등의 야욕, 지역 이기주의 등으로 멸실된 문화유적, 문화유산은 전국에 아마 수만 곳이 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침, 잦은 정변, 화재,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기록문화를 포함한 동산문화재의 보존이 아주 영세하다. 지상에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도 매우 희귀한 형편이다. 지하의 문화유적과 유산만이 현재 발굴된 유적·유물을 보완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가다듬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임을 온 국민이 가슴 속에 새기길 절실하게 바란다.

▲ ▲백자 철화포도송이문 항아리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로 적당한 높이의 아가리에 어깨부분이 불룩하고 아래로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이다. 크기는 높이 30.8㎝, 입지름 15㎝, 밑지름 16.4㎝이다. 직각으로 올라 선 아가리 둘레에도 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능숙한 솜씨로 포도 덩굴을 그려 넣었다.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포도 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표현으로 보아 도공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전문 화가들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몸통 전면에 푸른색이 감도는 유백색의 백자 유약이 고르게 칠이 된 이 항아리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국보 제107호)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는 국가 사적을 지정·관리하는 사적분과와 지정·미지정의 유물을 조사·발굴을 자문하는 발굴분과가 있다. 이들 분과는 산지·임야·전답·택지 등의 사적지정과 해제를 담당한다. 사적지정과 해제에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개입돼 있어 수많은 민원과 압력이 발생한다.

근자에는 사적지정을 원하는 기관과 단체, 개인이 거의 없다. 모두 지정해제만을 원한다. 해제를 원하는 예는 국가기관, 기업, 지방자치단체, 조폭과 비슷한 기업, 개인 등이 있다. 이중에서 질이 나쁜 경우는 기관단체와 기업에서 권력을 남용해 압력을 넣고 협박하는 경우다. 지정해제 조사나 발굴 후 지정해제 조사를 위해 현지에 나간 문화재위원이나 조사원과 전문위원에게 지정을 해제하도록 은근히 협박하고 겁을 주기도 한다. 국가기관에서는 문화재청장 등 최고급기관장에게 압력을 넣어 광활한 지역을 그저 대충대충 조사를 끝내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조선시대 유적은 조사 없이 또는 허가 없이 발굴해도 좋다는 식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아무 허가나 조사 없이 개발해도 좋다는 식이다.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은 우리 문화의 뿌리요 미래로 이어 발전시킬 매우 소중한 상위의 문화자산이다. 그런데도 마구잡이로 없어질 운명에 놓여 있다. 이것은 국가기관 스스로 문화재 보존을 포기한 행위가 아니겠는가.

문화재청의 자문위원회인 문화재위원회는 이외에도 문화재를 보존·관리해야 할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떻게 구성되는가.

과거 문화재관리국 시절에는 문화재관리국이 헌법기관이고 외국(外局)이었다. 그럼에도 교육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의 장 차관과 기획관리 실장의 영향력이 컸다. 문화재위원은 문화재 관리국장이 지명해 발표하지만 본부의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때까지는 문화재관리국장만이 아닌 문교부, 문화부의 입김이 들어갔다. 그 결과로 인선이 나아진 때도 있었고, 잘못된 때도 있었다. 당시엔 나이에 관계없이 학계의 중진원로가 위원에 인선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 승격된 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입김이 거의 없어졌지만 오히려 더 높은 청와대의 입김은 거세졌다. 여당 정치권의 입김도 작용한다. 문화에 정치적 영향이 너무 거세진 것이다. 정치권의 싸움판과 이념의 갈등이 문화재보존정책까지 휩쓸리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 청자참외모양병 <한국미술발전연구소>

청자참외모양병

고려 청자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참외모양의 화병으로 높이 25.6㎝, 아가리지름 9.1㎝, 밑지름 9.4㎝이다.

긴 목 위의 아가리가 나팔처럼 벌어진 것이 참외꽃 모양이고 목의 중간부에는 2줄의 가로줄이 백토로 상감돼 있다. 이런 모양의 병은 중국 당나라에서 비롯됐으나 고려시대에 와서 한국적으로 변화됐다.

몸통은 참외 모양으로 여덟 부분으로 나뉘어 골이 지었다. 목과 몸통의 연결 부위는 볼록한 선으로 둘러 확실한 경계를 이룬다. 목의 바로 아래에는 8개의 꽃봉오리 띠가 백상감돼 있다. 몸통의 중간부에는 여덟개의 면에 모란무늬와 국화무늬를 번갈아가며 1개씩 장식했으며 몸통의 아래쪽은 연꽃이 흑백상감돼 있다. 굽은 주름치마 모양의 높은 굽을 붙였다. 유약은 그다지 고르지 않고 색깔도 다소 어두운 편이나 전체적인 비례나 균형이 안정돼 있다.

이 병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가마터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가 같은 것으로는 국보 제94호인 청자 참외모양 병이 있다.

<문화재청>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