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어제의 적은 다시 만날까. 문재인 대통령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자 문재인-김종인 악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는 정권 창출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셀프 공천 논란이 일면서 두 사람 간의 거리는 멀어졌다. 민주당에 몸담았던 김 위원장이 지금은 다른 정당인 미래통합당에 몸담고 있다. 이런 악연을 가진 두 사람이 최근 청와대 회담 조건을 놓고 밀당을 하고 있다. 회담 추진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성사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재확산, 부동산 문제도 거론되겠지만 개헌 등의 정치적 현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과거의 악연을 뒤로하고 협치를 이뤄내기 위해 서로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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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 인연으로? 영수회담 개헌 테이블 되나

문재인-김종인 청와대 회담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회담을 먼저 꺼내든 이는 청와대다. 청와대 최재성 정무수석은 지난 17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지난 1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대표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밝혔지만, 통합당이 전날(16) 21일로 제안했던 일정이 불가함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8월에 당 대표들을 초청해 국정 전반에 대해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합당은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는 회담을 공식 제안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은혜 대변인은 빈말로 지나가듯 언저리에 던져 놓고 마치 저희가 거부해서 성사가 안 된 것처럼 떠넘기고 있다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익숙해지더니 대화마저 강매하고 있다. 국면 전환 쇼에 무턱대고 따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통합당 내부에서도 먼저 (여야 회담 제안을) 언론에 흘려 협조를 하지 않는 책임을 교묘하게 야당에 돌리려는 플레이라며 청와대가 위기 타개책으로 회담 카드를 꺼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청와대 회담 놓고 -신경전, 악연 새삼 주목

더욱이 문재인-김종인 간의 청와대 회담이 희박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과거 악연 때문이다.

실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했던 김 위원장을 전격 영입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비대위원 선임에서 문재인 복심으로 불렸던 당시 최재성 총무본부장을 제외시켰고, 공천과정에선 이해찬전병헌강기정정청래 등 친문 인사들을 줄줄이 컷오프시켰다.

당시 최재성 의원은 전에는 보이지 않는 손만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이 다 있다며 김 위원장에게 정면 반발했다.

또 총선 공천에서 김 위원장은 비례대표 2번으로 자신을 지명해 당내에선 노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양산에 칩거해 있던 문 대통령이 상경해 김 위원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올 3월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2016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셀프 공천논란 당시 문 대통령이 보인 태도에 대해 불쾌함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밤늦게 우리 집까지 찾아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달라부탁했던 사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민주당을 가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비례대표를 하시면서 당을 계속 맡아달라고 이야기 했던 사람이 그런 일이 발생하자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즐기는 태도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해 총선 직후 이뤄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비공개 만찬도 둘 사이에 불신이 커진 계기가 됐다. 회동 후 문 대통령은 비대위가 끝난 뒤 (김종인 대표가) 당 대표를 할 생각을 않는 것이 좋겠다. 대표를 하면 상처를 받게 된다지금 (대표) 합의 추대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수권비전위원회를 만들어 대선까지 경제민주화 스피커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표가 (대표) 경선을 나가라고 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당이 또 전당대회로 패거리 싸움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니 단단히 알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리자 김 위원장은 다시는 배석자 없이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해관계 맞아떨어지는 -개헌 논의?

그럼에도 두 사람이 회담 재추진을 하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극복 방안 등을 의제로 언급했고, 청와대도 코로나19 차단을 위해선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일정한 합의를 회동 조건으로 내걸었다. 김 위원장은 형식적으로 모양만 갖추는 만남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만나서 협의하면 결론이 나올 것 같다고 할 때 만남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만 맞대는 모습을 연출하는 회동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양측이 의제 조율이 이뤄지더라도 회동 형식이 문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일대일 단독 회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협치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단독 회담을 통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른 야당과 형평성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해에 이어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담 형식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면 양측 모두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정부분 양보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난 2016년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내각제 개헌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통합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넣었다. 당내 대권주자들이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시 김 위원장이 이를 추진하려 할 것이라며 내각제를 기반으로 한 총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위원장은 내각제 개헌을 강조하고 있고, 청와대도 부동산, 코로나19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회담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민주당은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민주당이 거대여당이지만 개헌을 위해서는 200석 이상 필요한 만큼 통합당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족수 300명 가운데 200석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표면적으로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하지만 부동산 급등 사태와 박원순 전 시장 사태로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제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 만료되는 만큼 2022년 대선에 앞서 개헌을 마무리 지어야 다음 대통령부터 바뀐 통치구조를 적용받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 초기에 개헌 논의가 이뤄지면 신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따라서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 이후인 만큼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과거 국면전환용 카드로 개헌을 시도 한 바 있다.

개헌.협치,정국 반전 일타삼피전략?

김 위원장도 지난 7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권력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제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개헌 논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특히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려 하고 있으나 개헌을 통해 본인이 직접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결국 개헌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협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헌은 문재인-김종인 간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다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얼마든지 개헌을 통한 협치가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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