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근 회장, 조병화 시인, 이갑성 광복회장 단골”

문화이용원 지덕용 이발사 선생 [사진=김혜진 기자]
문화이용원 지덕용 이발사 선생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7일, 혜화동 66년 역사의 산증인 ‘문화이용원’의 지덕용(84) 이발사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혜화동 우체국을 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이발소의 상징, 빛바랜 삼색동 두개가 돌아가는 ‘문화이용원’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화이용원은 1940년부터 반세기 넘게 이곳에 터를 지키고 있는 혜화동 역사의 산증인이다. 서울시가 지키고 싶은 39개 전통 점포 ‘오래가게’ 중 한 곳이며 ‘서울미래유산’ 인증 가게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날 빨간 글씨로 ‘이발’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흰색 가운을 입은 지덕용 선생이 한 노년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그는 가위질을 멈추고 기자의 명함을 무심하게 받아들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 40여 분간 진행되는 ‘문화이용원 코스’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천천히 한 올 한 올 정성스러운 가위질이 이어졌다. 

이윽고 손님과 눈빛을 교환한 그는 손님의 턱과 구레나룻에 면도 크림을 바르고 면도를 시작했다. 면도가 끝나자 옛 목욕탕에 깔려 있을 법한 타일이 붙어 있는 구석진 곳에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다. 지 선생은 면도를 마친 손님을 세숫대야 위에 엎드리게 한 다음 머리를 감겼다. 머리 감기가 끝난 손님은 혼자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 앞에 앉았다. 지 선생은 스킨과 로션을 꼼꼼히 챙겨 주고 헤어드라이기와 빗을 이용해 세심하게 ‘머리 뽕’까지 살려줬다. 고정스프레이를 뿌리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혜화동에 위치한 문화이용원 [사진=김혜진 기자]
혜화동에 위치한 문화이용원 [사진=김혜진 기자]

17살, 문화이용원 막내로 시작

지 선생은 6세 때 충청북도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와 줄곧 혜화동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문화이용원 단골로 머리를 깎으러 다닌 그는 1953년 6·25전쟁이 휴전된 후에 학교를 못 가게 되자 이웃 아저씨의 권유로 17살부터 문화이용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 선생은 “그때는 다들 가난하게 살 때라 어려웠는데 기술을 배우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일하게 됐다. 월급도 못 받고 밥만 얻어먹으면서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난로를 켜고 미리 청소도 해 놓는 막내 생활을 3년 동안 했다”고 회상했다. 

막내 생활이 끝나자 군대를 가게 될 나이가 된 그는 해병대에 자원해 군 복무를 했다. 군대에선 공부를 해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1965년 6월에 제대한 그는 다시 문화이용원에 취업했다. 본격적으로 면허증을 따고 월급도 받으며 일을 하던 지 선생은 사장님의 권유와 친구의 도움으로 28살 젊은 나이에 문화이용원을 인수하게 됐다. 그는 “문화이용원을 운영하며 자식들까지 다 키우고 나서 보니까 이 자리에서 66년째 일하고 있는데 세월이 금세 흘렀다”고 말했다. 그는 혜화동 일대에서 2대·3대째 주민들을 손님으로 받을 만큼 혜화동 토박이가 됐다. 

지덕용 선생이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지덕용 선생이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2·3세대 단골손님까지 “마음에 들도록 만들어 줘야죠”

문화이용원의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70년대였다. 근처 학교 학생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미용실이 많지 않았던 터라 단발머리였던 초·중학교 여학생들까지 이곳에서 머리를 다듬었다. 당시 부촌이었던 혜화동에서 최신식 시설을 갖춘 고급 이발소였기 때문이었다. 지 선생은 “지금보다 공간도 넓었고 의자도 더 많았다”며 “잘될 때는 직원이 9명인데도 쉴 틈 없이 바빴다”며 “요즘은 많을 때는 하루에 열 분 정도가 방문한다. 대부분 단골손님인데 동네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오는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현재 문화이용원의 주 고객층은 60~70대의 단골손님이다. 이 중에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었던 1세대, 2세대 기업 총수들과 정치인, 지식인 등이 있다. 박두병 전 두산그룹 초대 회장, 조홍제 전 효성그룹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등 대기업 창업주를 비롯해 그들의 2세들까지도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고(故) 이병도 장관, 고(故) 이희승 교수, 고(故) 조병화 시인, 독립운동가 33인 중 1명인 고(故) 이갑성 광복회장 등도 유명한 단골로 알려져 있다. 유명인들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두렵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지 선생은 “처음 3년간 밑바닥부터 다 배워 기술을 연마했다. 도구를 가는 것부터 청소하는 것 등 기술을 써먹든 안 써먹든 모든 걸 다 익혀 진정한 기술자가 됐기 때문에 두려운 건 없었다”고 설명했다. 

샴푸하는 공간 [사진=김혜진 기자]
문화이용원 머리 감는 공간 [사진=김혜진 기자]

단골손님 만드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여자나 남자나 머리를 자르고 나서 마음에 들어야 기분 좋지 않나. 마음에 들면 멀어도 찾아가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단골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성격을 알게 되고, 머리가 어울리도록 마음에 들게끔 해주니 자주 찾아주는 것 아니겠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이어 그는 “오랫동안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건 그동안 많은 손님들에게 인정받으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 선생이 좋아하는 노래도 가수 조미미의 ‘단골손님’이다. 그는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 무엇이 안타까워 기다려지네’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며 “단골손님이 오랫동안 안 와서 주변에 물어보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럼 그렇게 마음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혜화동도 많이 바뀌면서 다들 이사 가고 여기만 남았는데 오랜만에 들른 사람들이 반가워하니 고마움도 느낀다”고 했다. 힘들진 않느냐는 질문에 지 선생은 “바쁜 날은 힘들고 어떤 때는 점심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서 있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방문한 단골손님 김모(53)씨는 “단골손님 중에 내가 제일 막내일 것”이라며 “10년 가까이 문화이용원만 찾는다”고 했다. 그는 “머리카락이 곱슬이라 자르기 까다로울 텐데 항상 잘 정리해 잘라주셔서 마음에 쏙 들어 계속 오게 되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강남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냐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문화이용원
종로구 혜화로 7. 지하철 혜화역(4호선)에서 하차, 버스 100번, 102번, 104번 외 다수, 정류소명(혜화동로터리)에서 하차, 도보 1~2분.
02-762-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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