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인 북정마을에 도착한 마을버스 [사진=김혜진 기자]
성북동 북정마을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23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성북동 ‘북정마을’을 방문했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중략) 그는 말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란 것이 드러났다.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문인 이태준의 단편소설 ‘달밤’ 중 일부

과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성북동은 ‘시골 같은 서울’로 자주 표현됐다. 화려한 별장들을 제외하고 백성들이 마전을 하고 메주를 쑤며 생활하던 소설 속 정겨운 면면이 그대로 담겨 있는 덕분에 자연 환경을 흠모해 이사 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한양 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은 성북동은 부촌의 상징인 고급 단독주택들과 오래도록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북정마을’은 성북동의 과거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종점인 북정마을에 도착한 마을버스 [사진=김혜진 기자]
종점인 북정마을에 도착한 마을버스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봉고차보다 약간 큰 03번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면 북정마을 정류장에 도착한다. 버스는 몇몇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출발한 지 5분이 지나자 가파른 언덕길이 나오고, 왼쪽 높은 편으로 한양도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위로는 온통 낮은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해 있다.

종점인 ‘노인정’에서 내리자 정류장에 쓰인 ‘북정’이라는 시 한 편이 이곳을 처음 방문한 손님에게 북정마을을 잘 안내해 주고 있었다.

“천천히 흐르고 싶은 그대여 북정으로 오라.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이 그대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 삶의 속도에 등 떠밀려 상처 나고 아픈 마음이 거기에서 느릿느릿 아물게 될지니.”

정류장 뒤편에는 아주 오래돼 보이는 자그마한 가게 ‘북정카페’도 보였다. 문 앞에 걸린 액자 속 사진에는 손자·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은 낡고 오래돼 먼지가 쌓이고 녹슨 쇠가 곳곳에 많았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북정마을의 사랑방이었음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한가로운 평일 낮 시간이어서였을까. 인적이 드문 한양도성 아래에 넓게 펼쳐진 북정마을의 모습을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다. 북정 카페 맞은편에 위치한 ‘북정 노인정’ 앞에는 어린이들이 화려하게 색칠한 그림 타일들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집들이 모인 골목 사이사이를 들여다보니 색 바랜 문에 빨강색, 파랑색, 초록색, 보라색 등 색색깔의 문이 덧칠돼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길들이 이어졌지만 사람 냄새는 물씬 풍겼다. 

잠시 빨래를 널러 나온 북정마을 주민 이모(72)씨는 “여기는 오래 산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이웃 주민들끼리 다들 친해서 누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며 “지금은 재개발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나가고 없다”고 말했다. 

빛바랜 북정마을 안내도 [사진=김혜진 기자]
빛바랜 북정마을 안내도 [사진=김혜진 기자]

마을 입구 언저리에는 빛바랜 북정마을 안내도가 친절하게 관광객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지도 오른편에 북정마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심우장’이 1번으로 적혀 있다. 북정마을 언덕에서 밑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보이는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입적할 때까지 직접 짓고 거주했던 곳이다. 조선총독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남향이 아닌 동북향으로 지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근대 도시 한옥이다.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적이 됐다. 현재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문을 닫은 상태라 내부를 직접 관람할 수는 없었다. 

안내도 2번에 적힌 ‘비둘기 공원’은 심우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북정마을의 문화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뜻에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곳이다. 북정마을의 사랑과 평화와 희망의 염원을 담은 이곳은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비둘기 책방’이라는 장소를 만들어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지만 이곳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용할 수 없어 아쉬웠다. 

북정마을은 지난 2011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한옥마을로 조성될 계획이었지만, 근처에 한양도성 등 문화재가 있어 개발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결국 한양도성의 세계유산등재를 고려해 보존과 재생으로 정비계획을 바꾸는 용역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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