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 기자회견 개최

[사진=중대재해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사진=중대재해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오는 23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 예고 종료를 앞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법안 내용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계 학자와 전문가 등이 모인 연대 기구 중대재해네트워크도 정부가 직업성 질병과 경영 책임자 의무 등 주요 부분에서 법률 위임 사항을 제대로 정하지 않아 법안 실효성을 상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일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네트워크)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의견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직업성 질병과 경영 책임자 의무 등 주요 부분에서 법률 위임 사항을 제대로 정하지 않거나 위임을 안 한 사항을 정해 위임 입법 한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법안 실효성을 상실할 우려도 상당하다고 봤다.

시행령 제정 원칙 관련 천지선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및 정부 시행령안은 재계 요구에 따라 통상 형사법에서 통용되는 ‘명확성 원칙’의 법리 이상의 과도한 명확성을 요구한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위반 소지가 있어 위헌, 위법이며 오히려 중대재해 책임자의 처벌 범위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혹은 그 이하로 좁힘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의 본 목적과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네트워크는 법안 시행령에서 정한 중대재해 직업성 질병자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입법예고안이 정한 직업성 질병이 ‘급성 중독’으로 한정돼 있고 뇌심혈관질환 등 직업성 질병의 인과관계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외돼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의미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중대재해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중대산업재해에 직업성 질병자는 산재보험법에서 제시한 질병 등을 모두 포함해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로 정의해야 한다”며 “한 해에 추락사가 500여 명이고 과로사도 500여 명이다. 과로 관련 뇌심혈관질환 등 주요 직업성 질병을 중대재해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인과관계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일부 급성 중독만 중대산업재해로 정한다고 한다. 중대재해법에서 검토해야 할 인과관계는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직업성 질병과 사업주의 안전 확보 의무 위반 사이의 인과관계를 말한다”며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산재보상법에 있다. 중대재해법에 직업성 질병이 포함되면 산재보상이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이미 직업성 질병은 사망의 경우 중대재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고(故) 이한빛 피디는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직업성 질병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직업성 질병이 발생하면 모든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먼저 1년에 3명 이상의 동일한 직업병이 발생한다는 매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사업주가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도 입증돼야 처벌된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대상에서 빠진 중대재해법 법률안이 통과되자 괴로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8. [뉴시스]
정의당 장혜영 의원,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대상에서 빠진 중대재해법 법률안이 통과되자 괴로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8. [뉴시스]

시행령에 ‘재해 예방’ 관련 내용도 빠져

최정학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시행령 제4조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중대재해법 제4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의 내용’이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며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단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식하는 예시적인 내용이 아니라 사업장에서 예방에 필요한 일반적인 인력과 예산, 예컨대 위험 작업의 2인1조 원칙과 같은 내용을 시행령에 포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선안에 따르면 제4조(중대산업재해 관련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법 제4조제1항제1호에 따른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사업 및 각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편성 등 안전 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 방침의 설정 ▲사업 또는 각 사업장의 업무장소 및 작업 특성에 따라서 종사자에 대한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업무처리절차의 마련 및 이행상황의 점검 ▲종사자의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의 배정·시설의 설치 및 장비의 구비와 개선·그들에 소요되는 예산의 편성 등의 계획 ▲해당 계획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관리 체계 마련 및 시행 등을 종사자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 마련 ▲사업 또는 각 사업장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중지와 대피, 보고, 위험 요인 제거 등 대응 절차와 중대재해 발생 시 구호조치, 추가피해방지 조치 및 발생보고 등의 절차 마련 및 이행 상황에 대한 확인·점검 등이다. 

권영국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중대재해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일요서울에 “시행령안을 시정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이지만 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법의 실효성에 찬물을 끼얹고 월권행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두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며 “향후 제대로 가기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소회를 전했다. 

중대재해네트워크는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학자·전문가들의 연대 활동 기구다. 지난해 12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학자와 전문가 2164명이 공동 선언을 한 후 반복되는 산재사망과 사회적 참사 예방을 위해 함께 의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노동권연구소,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노동연구원, 사회건강연구소,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시민건강연구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08.18. [뉴시스]
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08.18. [뉴시스]

한편 지난 18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해당 법안이 보완 입법을 거치지 않고 내년 1월 예정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이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불필요한 시행 착오를 반복할 것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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