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시작된 의료법 수준에서 머물러”

간호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간호사가 길거리 피켓 시위에 나섰다. [이창환 기자]
간호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간호사가 길거리 피켓 시위에 나섰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전날 내린 눈이 길거리에 얼어붙어 있던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도로에 한 간호사가 1인 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날이 조금 풀렸다지만 냉기가 올라오는 찬 도로에 발을 붙이고 서 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일요서울이 짚어봤다.

지난해 1월 국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한 이후, 신천지發 확진자 급증으로 보건 체계가 순식간에 마비된 바 있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읜사, 간호사와 소방인력까지 밤낮가리지 않고 땀범벅이 된 채 현장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후 ‘덕분에’라는 이름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 인력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운동이 잠시 일었다. 현장에서 쉴 틈조차 없이 바빴지만 그런 응원의 한마디로 버텨왔다는 것이 이들이 푸념하듯 풀어낸 말이다. 

정부는 소비 위축과 국민들의 경제활동이 어려운 여건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화된 4단계 거리두기 등의 방역조치를 이어왔다. 보건과 방역 체계를 잡고 확진자 수를 끌어내리고자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순간에 그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11월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과 함께 연일 수천명대를 넘나드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에 정부도, 보건·방역현장도 버거운 상황. 넘쳐나는 확진자를 수용할 병상은 부족하고 이들을 돌볼 간호 인력은 태부족이다. 

간호사의 외침 …“간호 인력 태부족”

국민의힘 당사 앞 1인 시위에 나선 간호사 A씨. 그가 들고 있는 포스터는 “국민 건강증진과 예방을 위한 간호법 12월 정기국회에서 심의·의결해 달라”며 “OECD 국가 (평균) 4배의 살인적인 간호사의 노동 강도를 강요하는 불법의료기관 즉각 퇴출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대한간호협회 측은 “간호법 제정은 초고령사회 및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민생법안”이라며 “여야3당이 합의한 간호법은 12월 임시국회 내에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불법진료 문제도 언급했다. “불법 진료는 간호법이 아닌 진단, 처방 및 진료를 수행할 의사의 절대적 부족 때문”이라며 “불법진료 근절을 위해 목포의대 및 창원의대 신설,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을 확대한 공공의대 조속 설립 등 의대정원 확대를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원해서 1인시위에 참가하게 됐다는 경기도 한 대학의 간호과에 재학 중인 B양은 취재진에게 “간호사들이 추가적인 노동에 대해 인정받기 힘든 현실을 돌아보고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면서 “앞으로 간호사로서 일하게 될 텐데 이런 (불법진료) 병원들 역시 앞으로 내가 일해야 곳이기도 하다”라고 시위 참가 이유를 밝혔다.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돌봐야할 급성기 병상 기준 환자수는 일본이 7명, 미국이 5명, 캐나다와 호자가 4명이다. 우리나라 간호사는 1인당 12명으로 법이 제정돼 있으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해 수십명이 이르는 곳도 많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간호협회]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돌봐야할 급성기 병상 기준 환자수는 일본이 7명, 미국이 5명, 캐나다와 호자가 4명이다. 우리나라 간호사는 1인당 12명으로 법이 제정돼 있으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해 수십명이 이르는 곳도 많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간호협회]

“대부분 의료법은 병원과 의사 중심”

B양의 경우 내년이면 간호과 4학년이 되지만 당장 코로나19로 실습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이 따른다는 문제로 보일수도 있으나, 사실은 현장에서 이들을 지원하며 가르치고 이끌어줄 간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간호대 학생들이 코로나19 등과 겹치면서 고강도로 근무하는 간호 현장에서 얼마나 실습 지도를 잘 받았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대화에서 “우리나라 의료법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간호를 포함한 의료 인력을 전시에 동원하기 위해 통합시킨 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며 “우리나라는 간호사는 있어도 간호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패전 이후 1948년 간호와 의료법 등을 분리했으나, 우리나라는 1951년 한국전쟁 중에 국민의료법으로, 1960년대 다시 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면서 “이후 현재까지 그 법이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법은 병원과 의사 중심으로 구성돼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1997년 일본에서는 간호사가 과로로 쓰러져 사망한 일이 발생한 이후, 간호사 1인당 7명의 환자를 돌보게 했다. 미국은 간호사 1인당 돌봐야 할 대상이 5명, 캐나다나 호주는 4명이다. 우리나라는 의료법상 12명으로 정해져 있으나 강제 또는 처벌 조항이 없어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훨씬 넘어 최대 40명까지도 돌봐야 한다고 간호협회는 설명했다. 또 인구 1000명 당 간호사수로 보더라도 OECD 평균은 6.5명이지만 우리나라는 그의 53.8% 수준인 3.5명에 머물러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처음으로 간호사법 제정과 관련한 법안 발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상정됐다. 이에 지난 8일부터 간호사들이 국회로 나와 “반드시 법이 제정될 수 있게 해달라”며 수요집회를 시작했다. “간호법을 만들어 달라”는 간호사의 외침에 국회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서울시는 코로나19 병동 간호 인력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도 간호사 단체와 국회의 요구에도 결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전담 병원 간호사 인력 문제를 1년이 넘도록 검토만 하고 있다. 

자원에서 길거리 피켓 시위에 나선 간호대학생. 그는 “간호사들의 힘든 현실을 돌아보고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자원에서 길거리 피켓 시위에 나선 간호대학생. 그는 “간호사들의 힘든 현실을 돌아보고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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