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호텔 방에 있는 공중전화를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들이 온지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일이 일어났다.
군복차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 도한 사람들이 십여 명 밀어 닥쳤다.
“여기 사장 좀 나오라고 해!”
그들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이 곳 저곳을 뒤지며 거칠게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하무조 지배인이 무례한 무리 앞에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 종업원이 모두 몇 명이오? 당신이 사장이요?”
기관단총을 멘 군복차림의 청년이 지배인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당신들 도대체 뭐요?”
하 지배인이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
“조용히들 해요!”

그때 백 장군이라는 사람이 방에서 나왔다. 그들은 백 장군을 보자 모두 부동자세로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지배인 이 사람들 식당으로 좀 안내하시오. 난 사장님을 좀 만나고 올 테니⋯”
어찌 보면 탈영병 같기도 하고 게릴라대원 같기도 한 이들은 하무조 지배인을 따라 모두 식당으로 들어갔다.

백 장군은 같이 묵고 있던 두 청년과 함께 호텔 사무실로 들어가 사장 앞에 앉았다.
“박 사장 지금부터 내말을 잘 들으시오.”
백 장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사장을 보고 말했다. 사장이 고개를 들어 백 장군과 두 청년을 바라보다가 표정이 굳어졌다.

백 장군 뒤에 서있던 두 청년이 어느새 손에 권총을 꺼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요구가 있습니까?”

박필성 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오. 나라와 겨레를 위해 중대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백 장군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지금 이 호텔에 들어 있는 사람은 모두 몇 명입니까?”
“단체 손님이 있었는데 오늘 모두 떠나고 젊은 부부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도 여기서 내보내십시오.”
“예? 뭐라고 얘기해서 내보냅니까?”

“호텔 내부 배관에 이상이 생겨 가스가 누출되는 것 같아 위험하니 딴 호텔로 옮기라고 하십시오. 지금 당장 갔다 오시지요.”
백 장군이 턱으로 지시하자 권총을 든 젊은이 한사람이 박 사장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다가 뒤돌아서서 말했다.
“잠깐만요. 그 젊은 부부를 내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가서 이곳 정보를 흘리지 않겠습니까? 만에 일 정보가 새면 안 되니까 내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잡아두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포복졸도 할 나체 남녀의 포즈를 만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감금했던 것이다.
“모든 종업원은 지하실로 모아두게.”
백 장군이 군복 청년을 보고 지시했다.
종업원 열두 명은 모두 겁에 질린 채 지하실로 끌려갔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손발도 묶였다.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호텔은 완전히 백 장군과 그의 부하들 손에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지하실에 갇힌 뒤에 무슨 소리 같은걸 못 들었나요?”
변 장군이 사장을 보고 물었다. 박 사장은 잠시 생각을 더듬는 듯 했다.
“가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소리는 우리를 더욱더 공포에 떨게 했죠. 도대체 그 불한당 놈들은 누굽니까? 집단 강간범들 아닌가요?”

“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까?”
“여자들이 울기도 했습니다. 아마 옷을 벗기고 고문을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네 남편하고도 이렇게 했냐? 운전수 물건이 네 남편 거시기 보다 더 좋더냐? 서방질해도 품위가 있어야지. 자동차 안에서 빤스만 내리고 운전수와 그 짓을 한단 말이야? 뭐 이런 소리를 하자 잘못했으니 한번만 살려 주세요, 하다가 어디를 만지는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상한 것은 느끼지 못했습니까?”
“아이구 말도 마시오. 우리는 그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배인이 엄살을 떨었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은 당분간 우리 요원들에게 협조해야겠습니다. 우선 그들의 인상착의에 대해 모두 자세히 말씀 하셔야 겠고, 그리고 당분간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겠습니다.”

변 준장의 말이 떨어지자 두 젊은 여자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짧은치마가 말려 올라가 검정색 팬티와 허연 허벅지가 다 드러난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감금되었던 종업원들은 다시 연금이나 다름없는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
범인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호텔에 모인 작전 지휘부는 허탈에 빠졌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김교중 육군 장관이 굉장히 화를 냈다.

“그래,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이야! 그놈들이 홍길동이라도 된단 말이야? 빨리 흔적이라도 찾아 내봐! 개벼룩 같은 놈들! 퉤! 퉤!”
그는 화가 나면 아무 곳에나 침을 마구 뱉는 버릇이 있었다.
호텔 안을 샅샅이 조사했으나 뚜렷한 유류품이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폭발물 장치 같은 것도 없었다.

19화. 북부지역 부분계엄령을⋯

“어디 어디에 전화를 걸었는지 그것도 조사해 봐.”
수색 보고를 받은 성유 정보부장이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육군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치안본부 수사팀이 도착했다.

이곳저곳에서 지문을 뜨고 쓰레기통이나 의자 밑 등에서 버린 종이쪽지를 수집했다.
치안본부에서 급조한 수사팀에는 물론 곽영도 경감도 들어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 겁니까?”
살인사건 현장과는 너무나 다른 곳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던 곽 경감이 동료인 서 경감을 보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납치범들이 여기 있었다고 조금 전에 들었어요. 무장 납치범들인 모양인데 아마 정부 요인을 납치해 간 것 아닐까요?”
곽 경감은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수사를 하라고 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단 말인가?
몇 시간동안 여기저기를 헤매던 곽 경감은 여자 옷가지 몇 개가 책상 위에 모아져 있는 것을 보았다.

곽 경감은 그것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투피스 중 윗도리 하나와 쇼울, 스카프 두개, 허리띠 한 개였다.
곽 경감이 그것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스카프는 최고급품이었다. 곽 경감 같은 가난뱅이 월급쟁이 아내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물건이었다. 상당한 위치에 있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란 것을 금방 알았다. 허리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자의 투피스 윗도리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한국 제일의 패션 디자이너인 A라인에서 만든 옷으로 M.S.Cho라는 이니셜이 수놓아져 있었다. 곽 경감은 그것을 꼼꼼하게 수첩에 적은 뒤 수사 팀장인 수사본부 제4부장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부장님 우리가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 것입니까?”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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