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화장대에 엎드려 울고 있던 윤소미는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기분 좋게 자고 있나 보구나.”
윤소미가 다짜고짜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미구나.” 

상대방의 목소리가 긴장됐다. 
“내가 이렇게 망가지니까 고소하지? 아이도 없고 직장도 없고 남편하고는 매일 싸우고, 몸도 마음도 썩어가고... 나쁜 여자가 파괴돼 가는 모습 보니 이제 만족스럽니?”
윤소미는 전화기에 대고 악을 썼다. 

“소미야, 이러지 마. 그때 댓글 단 것 농담으로 한 거라고 말했잖아. 네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여러 번 사과했잖아. 제발 이러지 마. 옛날의 멋진 윤소미로 돌아와 줘.”

전화를 받는 사람은 최근에 주말 드라마를 써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윤소미의 친구 서정애였다. 완이가 실종되던 날 윤소미가 올린 코코아스토리에 ‘나쁜 여자’란 댓글을 단 장본인이었다. 완이네 가족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윤소미가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졌으니 ‘나쁜 여자’라고 쓴 것이었다. 그때는 윤소미도 짓궂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그러나 완이가 실종되자 완이를 찾아 헤매던 윤소미는 친구 서정애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서정애가 그날 댓글에서 결혼은 않더라도 아들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쓴 것을 근거로 서정애가 자신의 아이를 납치했다고 생각했다.

윤소미는 의심에서 그치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해 경찰이 서정애를 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정애의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서정애나 서정애의 근방 어디서도 아이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아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윤소미는 서정애를 의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정애의 블로그, 코코아스토리에도 의심의 글을 달기 시작하고 코코아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도 인신공격을 해댔다. 그러자 서정애는 일체의 SNS 계정을 없애 버리고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어 버렸다. 그런 윤소미가 서정애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옛날? 어떻게 돌아가? 완이가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 나쁜 여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남의 불행을 보면서 흡족해하는 너! 남의 불행을 딛고 행복을 누리고 있는 너, 네가 바로 나쁜 여자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 년이야.”

윤소미는 학창시절에도 입에 담지 않던 욕까지 퍼부으며 울부짖었다. 

‘아, 이게 지옥이구나. 지옥이 바로 여기야.’
김형준은 아내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현관에 걸려 있는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고 쓰여 있는 붓글씨 액자를 원망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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