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羅 저출산위 부위원장직과 기후대사직 전격 ‘해임’

나경원 전 의원 [뉴시스]
나경원 전 의원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13일 장관급 정무직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정식 사직서를 제출하며 당권행보 강행군에 나섰다. 사실상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결의’를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나 전 의원이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위 부위원장으로 발탁된 것은 애초에 ‘국정 보좌에만 충실하라’는 윤심(尹心,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통령실도 최근 나 전 의원의 공직 사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전대 출마를 원천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최근 행보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후 용산 대통령실의 제스처에 따라 국민의힘 전당대회 구도도 크게 요동칠 것으로 관측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나 전 의원의 저출산위 부위원장직과 기후대사직을 전격 해임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나 전 의원을 향한 윤 대통령의 ‘당권 불출마’ 불호령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사의를 표명한지 나흘 만에 13일 대리인을 통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내려놓겠다는 서면 사직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대통령실이 사직서 미제출을 이유로 나 전 의원의 사의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일관하자, 저출산위 사직에 못을 박으며 자신의 거취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취지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앞서 나 전 의원은 “저출산위 부위원장 사직의 뜻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내일 오전에 인편으로 서면 사직서를 제출키로 했다”고 결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질 게 터졌다’ 尹, 나경원 해임 불호령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응답은 빨랐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은 오늘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이 지난 5일 ‘헝가리식 출산 장려책’을 제안한 지 불과 8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의 해임 사유를 검토한 끝에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이날 사직서를 재가하지 않고 공직자 중징계에 해당하는 ‘해임’을 택했다는 점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윤심(尹心)을 의식했던 나 전 의원에게 사실상 대통령실의 ‘전대 불출마’ 기조를 못 박는 처사로도 풀이된다.   

전대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나 전 의원 입장에선 그야말로 난처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진노’를 감지한 당원 표심이 어떻게 요동칠지 모르기 때문. 무엇보다 당내 주류인 친윤계의 비토와 견제가 심화될 게 뻔한 상황에서, 전대 출마 시 친윤계의 정치 공세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대통령실은 후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후임 기후환경대사로 조흥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내정했다. 일찌감치 나 전 의원의 해임을 염두에 두고 후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를 물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립무원 羅, 비윤(非尹) 플레이어로 나서나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 전 의원이 정치인생을 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공직 사표를 제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윤 대통령이 ‘해임’ 철퇴로 되받아치면서다. 게다가 나 전 의원은 저출산위 부위원장 직을 내려놓으면서 여당 친윤계를 향해 작심발언까지 쏟아낸 상황. 

나 전 의원은 사표를 낸 이날(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러 떠나겠다”면서 “고민이 길어지는 점에 대해 국민, 당원, 언론인들께 무척이나 송구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직을 물러나면서 언급했던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는 말을 재인용, 대통령실과의 불협화음에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고 밝혔다. 당권행보 의지를 에둘러 표한 것으로 읽힌다.   

특히 “함부로 제 판단과 고민을 추측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을 드린다”며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를 직격한 발언이다. 

친윤계는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 엇박자를 내자, 비윤계 잠정 당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의 연대설을 제기하는 등 강도 높은 견제를 이어가고 있다. 여론조사상 당심 선두권에 있는 나 전 의원이 전대에 출마할 경우 친윤 후보인 김기현 의원의 당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 친윤계는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맏형’ 권성동 의원의 전대 불출마 선언으로 사실상 내부 교통정리를 마쳤다. 이후 김 의원을 구심점 삼아 ‘친윤 정당’ 출범을 도모하고 있다.

이로써 나 전 의원은 여당 주류와도 선을 그은 만큼, 전대에 나서더라도 독자 행보가 불가피한 처지가 됐다는 평가다. 

다만 나 전 의원이 최근 지역구 행사 등에서 연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낸 만큼, 당내 계파적 이해관계와 별개로 ‘윤심 수습’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나 부위원장이 친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는 해도, 윤 대통령과 척을 지는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라며 “윤심까지 저버린다면 당 대표 선거에서 가능성을 도모하기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실제로 나 전 의원은 최근 여당 친윤 의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과 물밑접촉을 가지며 이번 사의 표명이 윤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적극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의 갈등 봉합에 나서더라도 사표 수리를 건너뛰고 해임을 결정한 윤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윤심 수복’을 포기, 이참에 ‘비윤(非尹)·정통보수·수도권’ 브랜드를 굳히며 국민의힘 차기 전대에서 제3 영역 개척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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