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50만 명 “그냥 쉬었다”… 취업포기자 역대최대
사교육 심화부터 사내 악습, 기득권 비리까지
고질적 사회문제의 ‘합병증’… 귀기울여야 할 때

홀로 남은 취업준비생. [박정우 기자]
홀로 남은 취업준비생.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지난 2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비경제활동인구(구직자, 실업자 외) 중 활동상태를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15~29세)이 49만700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3년 1월 통계 작성이 시작된 후 역대 최대치이다. 이런 원인으로 청년들은 “불공평, 불합리, 불공정”을 꼽았다. 사회적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답변이다.

지난달 경제 활동 상태 통계 조사에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15~29세) 응답자가 50만 명에 육박했다. 2019년2월 38만6000명에서 2020년 2월 43만8000명, 2021년 2월 44만9000명, 작년 2월 45만3000명으로 상승하다 올해 49만7000명을 기록했다. 4년 사이 약 28.7%(11만1000명)가 대폭 증가했다.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거나, 즉시 취업이 가능한 상태였던 미취업자는 제외됐다. 일할 능력은 있는 것이며, 육아·가사·학업·심신장애 등의 이유는 없는 상태이다. 즉, 구직 준비 없이 말 그대로 ‘쉰’ 청년 인구이다.

청년들은 현 상태의 원인으로 “불공평, 불합리, 불공정”을 외쳤다. 이는 계속 지적되던 한국사회 꼬리표이다. 이런 문제가 장기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 과정을 겪은 청년들은 소위 ‘취포자(취업포기자)’를 넘어 완전한 취업 단념 상태가 됐다.

▶ “불공평해서, 무기력해”

정 모 씨(28)는 유년기부터 ‘불공평한 시작점’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1996년생인 정 씨는 ‘영어유치원’ 돌풍이 불던 시기에 딱 유년기였다. 그는 “당시 막 등장한 고액의 영어유치원을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다른 친구들은 알파벳을 넘어 영어 문장을 유창하게 소화하더라. 그게 다수였고, 학습 진도도 그렇게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때까지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다른 과목도 사교육 선행학습이 없으면 공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학습만으로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웠다. (현재 비경제활동인구인 것에 대해) 가난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원인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의 사교육 의존도 문제는 오랜 시간 지적받아왔지만, 교육계는 그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해왔다. 오히려 잦은 교육과정의 변화로 학생이 혼란을 겪는 사태가 지속됐다. 정권에 따라 교육제도와 역사적 사건·용어의 추가 삭제가 늘 논란이 되는 것도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바이다.  

정 씨는 두 번째로 취업 문턱에 대해서 꼬집었다. “그렇게 성적에 맞는 대학에 입학해 취업에 필요한 학점과 자격증을 얻는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의 수준과 기업이 요구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극명하다고 느꼈다. 몇 년 전 한 사회풍자 TV 프로그램에서 면접관이 ‘우리는 경력직만 뽑는데..’라고 말하자 면접자가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라고 윽박을 지르는 모습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정말 와닿았다. 막상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보니 면접 기회는 주어지지만, 대부분 경력직 우대였고, 이길 수 없는 경쟁처럼 느껴졌다. 수 년을 취업을 위해 정진했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큰 무기력감으로 다가왔고, 결국 단념했다.” 

정 씨가 언급한 방송은 2014년에 방영됐다. 이 당시에도 만연했던 경력직 선호 현상은 10여 년이 지나도 제자리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2022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총 2469명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경력직 선호 등에 따른 신입 채용 기회 감소(28.2%·복수응답)’를 가장 많이 선택하기도 했다.

▶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불합리해”

윤 모 씨(29)는 몇 번의 취업·퇴사 경험 이후 ‘불합리함’에 못 이겨 쉬고 있다 밝혔다. 윤 씨는 “첫 번째 직장에서는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면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개월을 버텼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급여일이 지켜지지 않으니 생활 계획도 흐트러지고, 필요한 지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임금 체불은 청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문제이다. 

윤 씨는 사내 악습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경직된 회사 분위기에서 오는 불합리한 일들이 많았고, 심리적 압박감도 느꼈다. 조기 출근과 무급 야근을 강요받는 느낌이었고, 모두 그렇게 하니 찍소리 못하고 할 수밖에 없었다. 월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퇴사 후 알아보니 모두 법에 위반되는 일들이었다. 이제는 지쳐 쉬고 싶다. 용기도 나지 않는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앱에서는 “거기 조직문화 어떤가요? 복지가 더 중요해서..” 등 기업의 연봉보다 복지에 대해 문의하는 글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이유로 최근 단기 퇴사자가 많은 만큼 근속연수가 길어질 수 있도록 복리후생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복리후생비로 3조2204억원을 지출했다. 2021년에 2조6301억원에 비해 23.7% 증가한 수치이다.

▶ “어차피, 불공정한 보상”

박 모 씨(26)는 한국사회로부터 받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많은 학생이 노력에 따라 공정하게 진학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운과 재력에서 비롯된다고 느낀다. 특히 연일 보도되는 기득권의 대입·취업 비리 사례는 정말 지나온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또 직장 내 평가에 성별과 나이가 포함되는 기분도 자주 느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요즘 세대에 대한 선입견이 능력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았다.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이 아닌가.” 

‘불공정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사회 분위기는 경직돼 있다. 지난 15일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61.2%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노력에 대한 보상이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사회 이슈 가운데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 사례로 꼽혔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을 위해 합리적인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도 노력이 무력화되는 데 대한 불만이 ‘불공정’하다고 표현되는 것”이라 진단한 바 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쉬었음 상태가 1년 반에서 2년을 넘어가면 본인의 근로 의욕이 줄고 낙인 효과까지 더해져 실직 상태가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생산활동이 둔화되고 세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냥 쉬었다”라고 응답한 청년이 50만 명에 육박했다. 장기적인 경제난으로 이어지는 결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회문제. 이에 비롯되는 최악의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판국이다. 조속히 합리적 설득이 함께 하는 실질적 대안이 마련될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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