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텔레그램. [박정우 기자]
안전하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텔레그램. [박정우 기자]

- ‘마약 던지기’ 등 범죄 지능화, 확산 방지 ‘대안 시급’
- ‘텔레그램’ 각종 범죄에 악용되며 ‘수사기관’ 곤욕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SNS 플랫폼 ‘텔레그램’이 강력범죄의 시발점으로 악용 및 변모해가면서, 무수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마약범죄 관련 노출이 잦아지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증가하며, 불법 도박과 투자사기 등의 접근성이 용이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료 콘텐츠의 저작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각종 사회분야에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에 마약, 성착취물, 도박, 투자, 유료 콘텐츠 등과 관련한 은어를 검색하면 각종 홈페이지 링크와 함께 익명성이 보장되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텔레그램’ 아이디가 다수 노출된다. 이곳에서는 범죄 행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나 불법 콘텐츠를 공유하는 채팅방이 안내된다. 

지능화되는 마약·성범죄

‘마약’의 경우 익명의 판매상들이 즐비하다. 한 텔레그램 계정은 마약과 관계없는 프로필 사진을 설정해 관련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비밀채팅을 시도하고 은어를 공유하면 곧바로 마약류 거래가 이어진다. 

별다른 절차 없이 결제만 확인되면 소위 ‘좌표’를 얻을 수 있다. 좌표란 몰래 마약을 숨겨둔 장소를 일컫는다. 입금이 확인되면 특정 지점에 마약을 두고 구매자가 주소를 확인한 후 가져가는 ‘던지기’라는 수법이다.

인터넷 검색부터 텔레그램 비밀대화로 마약 구매자에게 닫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이 되지 않는다.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 응한 브로커 출신 황 모(34세) 씨에 의하면 단순 일대일 거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집단으로 구성된 ‘공지 대화방’과 ‘후기 대화방’도 존재한다. 

다수가 참여한 대화방은 판매 마약의 종류와 가격, 구매 가능 지역, 신종 마약 소개, 품질 확인법 등을 공유하거나 품평과 추천을 일삼는다.

황 씨는 “대규모 마약판매상이 운영하는 채팅방의 경우 최소 수백 명에서 최대 수천 명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곳에서 마약 운반책을 구인하기도 하는데, 월 1000만 원 상당의 급여와 마약을 보장해준다”고 실태를 밝혔다.

범죄가 발생하는 텔레그램 채팅방의 종류는 단순 마약뿐만이 아니다. 2020년 불거진 소위 ‘N번방’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가 SNS상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N번방과 지난해 8월 드러난 성착취물 판매·공유처인 ‘엘 대화방’은 모두 텔레그램에서 이뤄졌다. 익명성이나 플랫폼의 보안성 등으로 증거수집이 어려운 점을 악용해 범죄에 이용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피해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은 피해자가 총 7979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6952명 대비 약 14.8%가 증가한 셈이다. 더불어 지난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4만8719건이 삭제 요청됐다. 

무분별한 확산, 도박·투자 사기

도박은 오랜 사회문제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에는 청년층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20대 도박 중독 환자 수는 5년간 127%가 증가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어디서든 손쉽게 온라인 도박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꼽혔다.

텔레그램에 도박 관련 은어를 검색하면, 그 자리에서 별도의 인증 없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참여할 수 있다. 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있지만,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의 휘발성 채팅 기능을 주요 소통 수단으로 삼으며 어려움을 겪는다. 쉽고 빠르게 계정 생성과 삭제를 할 수 있고, 계정 주인을 추적하기 어려워 수사 회피 수단의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코인시장의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일명 ‘코인방’도 존재한다. 2017년 말부터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암호화폐) 열풍이 분 이후 정보를 공유하는 채팅방이 여전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호황 속 ‘가짜 코인방’이 성행하고 있다.

가짜 코인방에서는 가상화폐 투자를 통해 수백 배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속여 투자자를 끌어 모은다. 조언(리딩)을 해줄 테니 수수료를 부담하라는 식의 사기 수법으로 접근한다. 텔레그램의 익명성을 이용해 더 치밀해지고 교묘해진 투자사기 방식으로 수사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현재 가상화폐 시장에서 정확한 정보를 받아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과정은 증명되지 않았다. 나아가 가짜 코인방의 조언으로 선행매매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투자자들이 이를 따라 거래에 동참하면 불법 거래 공범이 될 수 있다.

텔레그램을 통해 거래를 유도하는 장면. [뉴시스]
텔레그램을 통해 거래를 유도하는 장면. [뉴시스]

문화콘텐츠까지 침범, 유명무실한 저작권

최근 만화·영화·드라마 등 문화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는 불법 사이트 ‘누누티비’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정부 단속으로 14일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텔레그램에는 여전히 웹주소(ULR)를 변경하거나 유사한 사이트로 안내하는 채팅방이 만연하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저작권법 위반 사이트는 생성과 차단을 반복하고 있다. 유료 콘텐츠를 불법으로 무료 배포하며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유는 배너 등을 통해 막대한 광고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현재는 폐쇄된 누누티비만 해도 지난 2021년 10월 최초 개설 이후 누적 이용자가 834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서버를 두고 텔레그램과 같은 매체를 악용해 넷플릭스, 티빙, 왓챠, 웨이브 등 국내·외 OTT 영상을 무단으로 스트리밍한다.

영상저작권 협회에 따르면 저작권 피해액만 약 4조9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은 “불법 플랫폼의 접속자 수가 상당한 것은 정부의 제재가 실효성이 전혀 없던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나날이 디지털 기술, 온라인 매체 발전과 활용성이 높아질수록 관련 범죄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텔레그램’은 한국에서는 관계부처나 수사기관 등 사정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종 범죄에 악용되면서 제재를 위한 근거가 마련될 필요성이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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