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명희 WTO 사무총장 후보 지지...속내는?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WTO(세계무역기구) 차기 사무총장 선거가 미국 대선과 미·중 대리전 속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WTO 사무총장 결선에 오른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거취와 관련해 향후 대응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예정대로라면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반대하는 회원국이 없으면 9일 열리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승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WTO 사무총장 선출 막판에 미국이 유 본 부장을 지지하며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거부하고 나섰다. 일요서울은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전망해 봤다. 

-정부, WTO 사무총장 선거 놓고 미국과 국제사회 사이 ‘고심’

유명희 본부장 [뉴시스]
유명희 본부장 [뉴시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도전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유 본부장은 지난 6월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현재 공석인 WTO 사무총장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유 본부장은 “분쟁 해결 기능 상실과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시대 변화 등 WTO는 1995년 설립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모든 역량과 경험을 다해 WTO 회원국들이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의 발언은 미·중 무역 갈등과 리더십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WTO의 기능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유 본부장이 지적했던 것처럼 WTO는 위기에 빠져 있다. 브라질 출신의 호베르투 아제베두 전 WTO 사무총장이 지난 5월 개인적인 사유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임 의사를 밝히며 지난달 31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를 1년이나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아제베두 전 총장의 중도 사퇴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중국에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국은 지난해 12월부터 WTO에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의 위원 선임을 반대해 무역분쟁심의 기능이 마비된 상황이다. 미·중 간의 갈등이 WTO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 본부장은 지난 8월31일 WTO 사무총장 1차 선거 운동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했다. 정부는 산업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출마를 적극 지원했다. 일요서울이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가능성을 취재하던 지난 9월2일 외교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시로 WTO 사무총장 선거를 위해 재외공관을 통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며 “최석영 전 제네바 대사를 경제통상대사로 임명, WTO 사무총장 지원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9월3일 산업부 관계자도 일요서울과의 접촉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어 모든 사항을 밝힐 순 없지만 TF를 구성해 유 본부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도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거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 9월6일 국회에서 예방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같은 날 전화로, 회담을 가진 러시아 레오니드 슬루츠키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WTO 사무총장에 출마한 유 본부장의 지지를 요청했다. 이런 각계의 노력 가운데 유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 최종 결선에 진출해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데이비드 워커 세계무역기구 일반이사회 의장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다고 발표하며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가능성은 멀어지는 것으로 전망됐다.

트럼프-바이든 [뉴시스]
트럼프-바이든 [뉴시스]

 

정부 “유명희 WTO 사무총장 후보 사퇴 결정된 바 없다”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반대하는 회원국이 없다면 9일 열리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승일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막판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거부하고 유 본부장을 지지하며 우리 정부도 WTO 사무총장 선거와 관련한 대응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 고심 중이다. 

‘고해(confession)’로 부르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 절차는 일반 선거처럼 다수결로 이기는 구조가 아니다. 일반이사회 의장과 분쟁해결기구(DSB) 의장, 무역정책검토기구(TPRB) 의장 등 3명이 회원국의 선호도뿐 아니라 각 후보에 대한 지지국의 지역적 분포 및 경제적 수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후보를 추천한다. 한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는지에 따라 승부를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정부는 지난 5일 한 매체가 보도한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후보 사퇴 발표 기사에 대해 부인하며 “후보자 개인의 거취나 우리 정부 입장에 대해서는 종합 검토 중에 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도 결정된 바 없다”며 “우리 정부는 WTO의 규정과 절차를 존중하는 회원국으로서 사무총장 후보자에 대한 최종 컨센서스 도출 과정에서도 건설적인 자세로 참여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회원국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부가 지난 3일 치러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유 본부장의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의중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콘조이웨알라 [뉴시스]
오콘조이웨알라 [뉴시스]

 

강인수 “WTO도 미국 대선 결과 보고 향후 대응방향 모색 중”

지난 5일 일요서울과 통화한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명희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나이지리아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반대해 사무총장 선출이 지연됐다”며 “WTO도 미국 대선의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대응방향을 모색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유명희 본부장의 WTO 당선 가능성은 있는가.
▲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최종 결정해서 반대하며 유명희 본부장을 밀고 있지만 미국 대선으로 정권이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공식적인 발표는 안 했지만 WTO 회원국들의 선호도 조사에서 나이지리아 후보가 다수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유 본부장의 당선 가능성이 달라지는가. 
▲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은 경제적으로 대립을 겪고 있다. 미국은 WTO를 개혁해 미국의 입지를 회복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중국과 경쟁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적합한 후보가 유 본부장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유 본부장을 지지해 WTO를 흔들기보단 적당한 선에서 미국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전망한다. 
- 일각에선 정부가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당선이 안 될 경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WHO 사무총장으로 출마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방역 대처 문제로 국내에서 지지를 받는 것과 별개로 국제적 여론이 정은경 청장을 어떻게 뒷받침해주느냐는 다르다고 본다. 그리고 WHO 사무총장 자리도 WTO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미·중 간의 대립 가운데 정 청장의 출마 가능성은 어렵다고 판단한다. 
미·중간의 대립과 지난 3일 치러진 미국 대선의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으로 여전히 안갯속인 가운데 WTO 사무총장 선거를 둘러싼 우리 정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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