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끊는 게 아닌 평생 가는 ‘만성 질환’”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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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마약은 소리 없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검찰이 적발한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6044명이다. 검찰이 마약 범죄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0년 이래 최고 수치다. 이전과 달리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탓에 마약 투약 비율은 증가하고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마약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요서울은 지난 22일, 23일 마약 문제를 고민해 온 전문가 2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전 세계 온라인 마약 거래 성행…연령 낮아져
- 중독, 빠른 회복 도우려면 사회가 함께 ‘응원’해야

허재현 기자는 한겨레신문에서 일하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던 중 해고당했다. 현재는 행동탐사전문 ‘리포액트’를 운영하며 약물중독회복연대 활동가로서 마약 투약자 인식 개선 활동을 하고 있다. 마약 유경험자인 그는 “‘마약에 노출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며 “의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노출된 것이다.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예방사업팀 부장은 “마약 중독은 한번 시작되면 끊을 수 없기에 ‘만성 질환’이라고 본다”며 “무엇보다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약물중독회복연대 활동가

-마약을 하고 난 직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쾌락과 자극을 느끼기 때문에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큰일 났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약을 한 차례 해보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쾌락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마약을 하게 되면 일상생활이 어렵진 않나. 
▲ 중독이 심각해지면 어렵다. 약에서 깨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특별히 지장이 없다. 중독은 당장 심각해지기 보다는 몇 년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이 파괴된다. 제어가 필요한데 대부분 그게 어려우니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도 일반적이지 않은 케이스다. 한 번 하는 순간 깊이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마약을 끊은 건가.
▲ 끊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평생 가져가야 할 질환이다. 한번 경험해본 이상 평생을 ‘참고’ 살아야 한다.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만 자제를 한다. 

-마약 중독자에게 비난만 할 게 아니라는 말의 뜻은.
▲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을 ‘뇌질환’이라고 본다. 때문에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약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상이 파괴되면 다시 약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 정책은 낙인을 찍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데 이건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당신이 마약을 한 건 불행한 일이다. 마약을 하지 말고 삶을 회복해가자. 곁에 서고 응원할 테니 함께 마약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 게 훨씬 더 좋은 회복 방법이라는 걸 그들 곁에서 관찰하며 알게 됐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예방사업팀 부장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비대면) 마약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고.
▲ 온라인 유통 방식이 강화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온라인 마약 거래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접근은 아무래도 젊은 층이 수월하다. 때문에 마약 거래 연령대도 점점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마약 예방교육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 최근 마약 관련 정보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청소년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에 정부도 공감하는 것 같다. 지난해 말 ‘학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마련됐는데 이는 기존 약물남용 예방교육 방식에서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남용 예방교육이 가능토록 했다. 다만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현장 교육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본부)에서는 예방교육·관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 그동안 교육은 현장에서 대면으로 진행해 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아쉬운 건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예방’ 차원의 교육만 한다는 것이다. 마약류 폐해 정보를 주거나 마약을 권유 받았을 때 거절하는 연습 등이다. 특히 학교에서는 교육 시간이 짧아 더욱 한계가 있다. 외국의 경우 15세션(15~30시간)을 기본으로 정기 교육을 진행하지만 우리는 학교폭력·성폭력에 밀려 1시간 정도밖에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요즘에는 못하고 있지만 마약중독회복모임 ‘NA’를 운영한다.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회복 경험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임 활동 등 다양하게 진행한다. 

-본부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나.
▲ 거의 없다. 우리 사회는 마약을 했다고 하면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타격이 오히려 마약을 투약했을 때 받는 타격보다 더 큰 것 같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 이로 인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도움을 찾지도 않고 숨으려고만 한다. 신변을 철저하게 보호하며 도움을 준다고 해도 잘 믿지 않는다. 본부에서도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발굴하기 꽤나 어려워 이들이 목숨 걸고 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

-마약 문제가 줄지 않고 있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보나. 
▲ 마약을 한 번 해본 사람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는 게 매우 힘들다고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중독이 되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재활치료보다도 예방이 필요하다. 마약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회복된다는 개념보다 평생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잘 치료를 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다시 빠지게 될 수 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약을 중단한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거다. 이들은 스스로 투쟁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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