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절기 강제철거 금지하기로 했는데”… 계획 세운 이재명 후보는 외면
강제철거 당한 세입자 ‘울음’…용역 들이닥쳐 창문 뜯고 가재도구 내던져 

산성구역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주거민들이 은수미 성남시장을 찾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산성구역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주거민들이 은수미 성남시장을 찾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주거권은 인권이다” 겨울이 시작된 지난 1일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의 한 주택가에서 중년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갑자기 몰려온 인원들이 대문을 따고 집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뜯고 창밖으로 물품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들을 대항하며 A씨는 내쳐지는 가재도구들을 받아낼 겨를도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온 이웃 주민 B씨가 항의했지만, 그들은 ‘법집행’을 이유로 B씨의 진입조차 막아섰다. 강제철거는 그렇게 동절기 시작과 함께 개시됐다.

성남시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겉보기에는 재개발에 따른 신도시 탄생과 도시 계획 등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 대선 정국에서 가장 큰 이슈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대장동 사건과 백현동 사건에 대한 시민단체 고발이 이어지고 이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비롯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던 핵심 관계자 가운데 하나인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지금 성남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강제철거를 위해 찾아온 재개발조합원들과 용역들. [이창환 기자]
강제철거를 위해 찾아온 재개발조합원들과 용역들. [이창환 기자]

지난 1일 A씨가 잠깐 볼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던 중, 집으로 몰아닥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산성구역(도시 계획이 진행되는 산성동 일대를 의미함) 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재개발조합 소속 조합원들과 이들이 데려온 용역들이었다. 

이들은 문을 박차고 들어오긴 했으나 A씨가 집안에서 버티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남성들뿐이었던 이들이 여성인 A씨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것.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재건축조합 소속 인원들 가운데 여성조합원들이 몰려왔다. 그 때부터 A씨를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A씨는 소리도 지르고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조합 측이 데려온 용역들의 집안정리가 시작됐다. 큰 가재도구는 창을 뜯고 연결된 길에 세워둔 트럭에 옮겨 싣고 작은 살림살이들은 내던져졌다. 그 사이 A씨의 전화를 받은 이웃주민 B씨가 달려왔지만 B씨는 현장에 다가갈 수도 없었다. 용역과 조합원들은 법집행관을 앞세워 “법 집행 중이다”라며 B씨의 진입을 막았다. 이후 신고를 받은 경찰도 왔지만, 경찰도는 역시 ‘법 집행’을 거들었다. 

B씨는 일요서울과의 대화에서 “아니, 여름도 아니고 겨울이 닥쳤는데 이렇게 강제로 철거하면 길거리에 나가 얼어 죽으라는 소리냐”며 “관례적으로 아무리 강제철거라도 겨울철에 집행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도 법 집행 중이니 참으시라”며 “오히려 나를 말리더라”고 하소연했다. 

서울·부산·광주·대구엔 동절기 철거 없는데 '경기도는'
주거권은 인권… 동절기 강제철거는 인권 짓밟는 것  

서울시는 최근 몇 년 사이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지해왔다. 서울시에서 행해지는 정비사업 관리 및 감독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8조의2(건축물의 철거 등) 제 3항 4호에 근거해 법원의 인도집행을 포함한 일체의 강제철거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8년 서울 각지에서 재개발에 따른 강제집행이 진행되던 당시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엄동설한의 (철거) 강제집행은 주거권을 넘어 생존권과 직결된다”며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모든 법과 행정적 권한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원칙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에 이어 부산광역시도 지난해 김태훈 부산시의원 발의로 동절기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강제철거를 제한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일부 개정안이 도시안전위원회 심사를 통과했다. 대구광역시 또한 올해 2월 대구시의회 본회의에서 ‘대구광역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서울과 광주, 부산에 이어 네 번째다.

일례로 서울에서는 성북구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가 장위 10구역 재개발 사업 등으로 법원으로부터 철거 명령이 떨어졌으나, 서울시 조례 등에 의해 내년 2월까지는 강제철거 집행이 불가능하게 됐다. 이에 재개발 조합에서는 내년 1월부터 사랑제일교회 자리를 제외하고 재개발을 시작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언론에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 이호승 상임대표는 취재진에게 “꼭 법이나 시 조례 등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동절기 강제철거를 하는 것은 주거권을 짓밟는 것”이라면서 “주거권은 인권이다. 그런데 한겨울 날씨에 주민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제로 차에 실리는 철거 가구의 가재도구들. [이창환 기자]
강제로 차에 실리는 철거 가구의 가재도구들. [이창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양승조 충남지사의 약속

곧 쫓겨날 지경에 처한 이들은 정부가 한겨울 길거리로 나앉게 된 세입자들의 주거권과 인권을 알아줘야 한다며 하소연을 이었다. 이에 대해 이호승 대표는 “2015~2016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양승조 사무총장은 철거민들 앞에서 약속을 한 것이 있다”며 “동절기 강제철거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었다”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양승조 충남지사는 사무총장으로 있던 시절이다. 두 사람은 철거민들 앞에서 당 이름을 걸고 철거민들과 “동절기에는 강제철거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계획했던 도시 재개발 계획을 앞세워, 재개발조합은 동절기 강제철거로 세입자들을 길거리에 내쫓고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체재로 돌아가고 있다. 

철거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과 전철협은 지난 1일 강제철거를 당한 지 이틀 뒤인 3일 서울 여의도의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을 찾아 강하게 항의했다. “재개발조합 및 사업 시행처와 용역에 의해 철거민들의 생활 터전이 짓밟히고 재산권, 생존권이 유린돼 삶이 파괴되고 있다”며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후보는 이런 동계 강제철거 사태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들의 생존 의지와 아우성을 외면하고 토건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하는가”라며 “삶의 터전에서 살게 해달라고 최소한의 주거공간과 영업생존권을 정부로부터 보장해 달라는 철거민의 외침을 뒤로한 채 합법을 가장해 길거리에 내동댕이치는 ‘공무집행‘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외쳤다.

세입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성남시장 시절 계획대로 도시개발 진행을 위한 산성동 강제 철거를 두고만 볼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재명 후보나 더불어민주당은 답이 없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던, 지난 6일에도 강제철거를 위해 재개발조합과 용역들이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세입자들과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철거민협의회가 동절기 철거를 반대하며 길을 막았다. 하지만 언제 또 다시 법집행을 이유로 강제철거를 위해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한 산성구역 주인은 “대통령도 우리를 잊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을 어겼다”라며 “이재명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를 외면한 채 자신이 성남시장 시절 계획했던 일을 강제로 집행하도록 뒀다”라고 하소연했다. 

4000세대 머물던 곳 2억 짜리 426세대 임대 아파트

산성구역은 도시 계획이 진행되기 이전에 4200~4300세대 가량이 머물던 주택가다. 하지만 지난 2013년부터 성남시가 주택재개발사업 정비계획을 결정하면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등에 따라 산성 주택재개발사업이 계획됐다. 이후 정비계획(변경) 등을 이어왔다. 

산성구역의 주택재개발 사업을 주도해 온 재개발조합 측은 세입자들의 이전 및 이동을 요구했다. 그 가운데 4000세대가 넘게 떠나고 남은 이들은 약 100여 세대. 조합은 이들에게도 수차례 퇴거 및 거주지 이전 등을 요구하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동의를 받고 지난달 23일을 기점으로 이른바 ‘최후통첩’을 했다. 

그런데도 왜 A씨를 비롯한 100여 세대는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걸까. 성남시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성남시는 재개발조합이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법집행하는 데 대해 참견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면서 “지난 11월23일까지를 기점으로 ‘이동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의 세입자들을 위해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에 지어지는 아파트 세대의 13%에 달하는 426세대의 임대아파트도 함께 짓게 될 것”이라며 “기존에 거주하던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우선권이 있다”고 덧붙였다. 

성남시의 설명을 종합하면, 2013년 11월 이전부터 거주해오던 세입자들에게는 신규 아파트 입주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우선권과 426세대의 임대아파트 건설 등의 계획에 대해 현재 남아있는 100세대의 거주민들은 다른 말을 했다.

용역 등으로부터 강제철거당하던 A씨를 돕기 위해 나섰던 B씨는 취재진에게 “수천세대 넘게 떠났는데 426세대 보장이 무슨 소리냐”라며 “게다가 조합이 970억 원에 대우건설에 매각해 지을 임대 아파트 가격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에서는 이러더라. ‘우선 나가라. 2년 뒤에 임대아파트 지어지면 그 때 와라’ 이 말 믿고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주변 시세를 따지면 민간(대우건설)이 짓는 임대아파트는 못해도 2억 전·후반이 될 텐데 우리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성남시에 따르면 처음에는 LH가 공사를 맡았었지만 중간에 대우건설로 넘어갔다. 14평 형과 17평 형의 임대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 ‘임대 아파트 우선권을 가진 세입자들에게 이사를 위해 주어지는 비용’에 대해 묻자 성남시는 “주거 이전 비용으로 1인 가구 기준 800~900만 원과 이사비 100만 원 이하가 지원된다”고 답했다. 

1000만 원의 지원금을 내주고 2년 뒤 2억 원(추정 시세)에 이르는 임대아파트에 돌아오라는 소리다. 성남시는 “2년 뒤에 월세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즉 1000만 원으로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하고, 2년 간 버티다 2억 원 상당의 임대 아파트에 월세 세입자로 돌아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산성구역 주거 세입자들은 대부분 일용직 또는 단순 노동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다. 한 주민은 “대통령님이 그 때 약속을 지켜줄 순 없을까”라며 “이재명 후보님이 그 때 민주당 이름 걸고 한 약속을 지켜줄 수 있을까”라고 되뇌었다. 

주택 안에 들어가 있는 집행관들과 밖에 물건을 내놓는 집행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창환 기자]
주택 안에 들어가 있는 집행관들과 밖에 물건을 내놓는 집행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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