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을 당한 장미영은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김인세의 목을 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꼭 껴안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기묘한 곳에서 타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육중한 구리의 날개를 편 보신각종은 젊은 연인의 뜨거운 사랑을 감싼 채  침묵하고 있었다. 

김인세의 손이 장미영의 가슴에서 아랫배로 가다가 마침내 스커트를 헤집고 들어갔다.  광교에서 종로로 달려오는 트럭의 엔진 소리가 숨 가쁘게 들렸다. 종속의 포효는 타종 할 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 낮 기묘한 장소, 보물 2호의 품속에서 나눈 사랑이 끝나자 장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종이 보물 2호라면 저쪽 청계천 지하에 걸린 공통교는 보물 3호가 되고도 남는 사연이 있어요.”
그녀는 격렬한 사랑 뒤에 오는 멋적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광통교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야 그냥 조선조 한양 최초의 석교 정도 의미 밖에 더 있어?”
김인세가 동의하지 않았다.
“인세씨는 그 다리에 얽힌 이성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방원의 피맺힌 증오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예요.”

“그래? 그게 뭔데?”
김인세는 흐트러진 장미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광통교는 다리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그 배경이 더 흥미진진하지요.”
장미영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광교, 즉 광통교는 조선이 개국되고 한양을 서울로 정했을 때 도성에서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남대문을 지나 경복궁으로 오기 위해 청계천을 건널 때는 이 광통교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이 다리는 토교로 만들어져 홍수만 나면 떠내려가기 일 수였고 그 때마다 한성은 강남 강북이 불통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이 메인스트리트에 돌다리를 놓은 것은 조선조 3대왕인 방원, 즉 태종이었다. 그러나 이 다리는 순수한 토목 공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한 사나이의 불타는 복수심과 천추의 한이 서려있다.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의 회군으로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도읍을 한성으로 옮기고 정도전등과 함께 경복궁을 짓는다. 그리고 경처(京妻), 즉 벼슬아치들의 현지처인 강비(康妃)를 정식 왕후로 삼는다. 태조에게는 강비 외에 향처(鄕妻)인 한씨가 있었다. 방원을 비롯해 여섯 왕자를 생산한 한씨는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이태전에 이 세상을 떠난다. 

태조는 강비를 끔찍이 총애해서 그녀의 막내아들인 방석(芳碩)을 세자로 삼는다. 강비에게는 방번(芳蕃)이라는 아들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세자의 배다른 형들인 한 씨 소생 여섯 왕자가 가만있을 리 없다. 그 중에도 정몽주를 살해하면서 까지 아버지의 역성혁명을 도운 방원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강비와 그의 비호 세력인 당대의 실세 정도전(鄭道傳)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마침내 기회는 왔다. 왕비가 된지 5년 만에 강비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태조는 강비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정사도 식음도 폐지하다 시피 한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한양의 한복판인 취현방에 강비의 능을 쓰고 정릉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 정릉은 덕수궁 서북방 지금의 정동(貞洞)이다. 왕은 도성 안에 묘를 쓰면 안 된다는 금기도 어기고 여기에 웅대 무비한 화려한 정릉을 만들고 군사 백 명이 호위케 한다. 

그뿐 아니라 능을 지키는 흥천사라는 절을 170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짓는다. 왕은 아침저녁 경복궁의 문루에 올라가 정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뿐 아니라 이틀이 멀다하고 말을 타고 정릉에 나가 강비와 밀어를 나눈다.

왕이 실의의 나날을 보내는 틈을  타서 방원은 지지 세력을 규합한다. 마침내  한밤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도전 일파를 참살하고 왕을 협박하여 대권을 쥐게 된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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