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몇 번이나 교각에 얼굴을 부비며 감격스러워 했다. 그들은 교대로 쓰인 신장석을 확인했다.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고 있는 신장 주변을 구름과 당초문이 가득히 감싸고 있었다. 그 주변에도 정밀하게 조각 된 능석(陵石)들이 즐비했다. 무늬가 거꾸로 박힌 것도 있고, 조각을 내 처참하게 깨진 돌도 있었다. 얼마나 함부로 돌을 다루었나 하는 것을 잘 나타냈다.
“다리 이쪽은 어디쯤인가?”
남쪽 교대를 열심히 살피던 김갑중 회장이 물었다.
“그쪽은 은행 쪽이고 이쪽은 영풍문고 쪽입니다.”

온갖 오물이 다 묻어 더러워진 돌에 얼굴을 마구 비벼 엉망이 된 김인세는 그래도 절로 함박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바로 우리 위는 어디쯤인가?”
김갑중 회장이 다시 물었다.

“바로 위는 광교 한 복판이지요. 방원이 정도전을 베기 위해 한밤중에 군사를 이끌고 처들어 갈 때도 이 청계천을 건너갔고, 1961년 미명에 중아청으로 들어간 쿠데타군도 이 다리위로 지나갔죠. 그뿐인가요? 신군부가 대권을 쥐던 12월의 추운 겨울밤에도 정치 장군들이 이 다리 위를 얼마나 지나 다녔을까요.”
장미영이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하자 한동안 다리 밑은 침묵으로 이어졌다.
“자, 대강 살펴보았으면 내일부터 김인세 소장의 소원을 풀기 위해 이 남쪽 신장석부터 들어내야지.”

김 회장이 침묵을 깨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여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 되었다. 우선 은행 쪽에 있는 가장 큰 신장석을 뜯어내는 일이었다. 암반 굴착기와 각종 드릴러, 산소 용접기 같은 장비가 동원되었다.
작업은 주로 김 회장과 진복성이 지휘했다. 그들이 데려온 기술자들이 작업을 주도했다.

그런데 일을 해가는 동안 김인세는 점점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김인세나 장미영의 의견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하고 그들 마음대로 작업을 했다. 중요한 조각들을 함부로 다루어 부숴버리기도 했다.
그보다 석조물을 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한쪽을 향해 터널을 뚫는 것 같은 수상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며칠을 보고 있던 김인세가 마침내 김 회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회장님, 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것입니까?”
“무슨 일을 하다니, 이게 자네들이 바라던 일 아닌가?”
그는 김인세와 장미영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지금 신장석을 뜯어내지 않고 그 옆에 구멍만 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돌을 뜯어내는데 산소 용접기나 강철 뚫는 드릴러가 왜 필요 합니까?”
“그건 쇠를 다루는 데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네.”
김갑중은 평소와 달리 대단히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 해머 드릴이나 프라스마는 무엇에 씁니까?”
김인세가 다시 따졌다.

“당신은 기술자도 아니면서 따지기는 뭘 따져!”
이번에는 진복성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면서 대꾸했다.
김인세는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일단 입을 다물었다.
지하의 광통교 탐색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인세는 장미영에게 그곳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장미영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부득부득 따라 들어왔다.
김 회장과 그 일행은 이제 김인세를 완전히 제쳐놓고 벽 뚫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바른대로 이야기 하세요.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광통교 문화재 조사한다고 나를 앞세워 놓고 엉뚱한 짓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김인세가 단단히 각오하고 대들었다. 오늘은 담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따졌다.

“흐흐흐. 드디어 눈치를 챘구먼. 속 시원히 이야기해 주지. 네 말이 맞았어. 문화재 탐색은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이 벽만 뚫고 들어가면 현금이 가득 쌓인 천국이 나오지.”
“뭐라고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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