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사모님들 나체 고문을 한다고?”

- 우리 여성부장의 인도하에 그녀들과 남편들인 소위 장관님들의 과거 잘못을 낱낱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 무슨 소리야? 고문을 하고 있단 말이요?... 

- 아아, 흥분하지 마십시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들이 그런 비민주적인 일을 할 것 같습니까? 고문 같은 것은 당신들의 무기가 아닙니까? 다만 사모님들은 스스로 옷을 모두 벗고 깨끗한 몸으로 그들의 잘못을 한 사람 한 사람 고백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 맙소사! 옷을 모두 벗겼다고? 나체 고문을 하고 있구먼...
“이런 나쁜 놈들!” 
대화 녹음을 듣고 있던 김교중 육군 장관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스피커가 일단 멈추었다.
“파렴치범들 아니야. 내 마누라 몸에 손만 댔어봐라!” 
팽인식 장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조용히 합시다. 설마 그런 야만스러운 일이야 일어났겠습니까? 자, 다시 시작합시다.” 
총리의 말이 끝나자 곧 스피커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 우리가 벗긴 것이 아니고 참회하기 위해 여자들이 택한 일입니다. 몇 명이 살아서 돌아갈지 모르지만 모두 새 사람이 되어 돌아 갈 것입니다. 
- 사모님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절대 안전하니까 안심하시구요... 오늘 요구 사항은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 좋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까요?... 
- 내일 아침 한강 유람선 위에서 만납니다. 아침 7시에 여의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에 우리 대표가 타고 있을 것입니다. 배가 한남대교 근방에 이르면 우리 대표가 얼굴을 보일 것입니다. 당신들 대표는 두 사람만 허용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성유 국장이여야 합니다... 

- 또 한사람은... 
-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 당신들 대표가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 그건 염려 마십시오. 우리가 성유국장의 얼굴을 아니까 승객 중에 우리가 타고 있다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들 대표는 두 사람 외에는 안 됩니다. 엉뚱한 짓 하면 보복 당합니다. 배가 폭파될 뿐 아니라... 한 시간 뒤 전화 할 테니 회답 주십시오... 
스피커는 거기서 끊어졌다.

“자, 여러분 잘 들으셨지요. 다음 전화가 올 시간은 20분 남았습니다. 의견이 있는 분은 말씀하십시오.” 
총리가 의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비대위를 하는 겁니까 국무회의를 하는 것입니까?” 
김교중 육군 장관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총리가 다시 의석을 돌아보았다.
“그까짓 것 알아서 뭐해. 우리 마누라가 지금 깡패들 앞에서 홀랑 벗고 거시기를 바칠 판인데...”

육군장관이 탄식하듯 말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도 홀랑 벗겨 놓고 사랑해본 일은 한 번도 없는데... 아이고, 그 놈들이 내마누라를 벗겨놓고 장난을 치고 있다니. 이거 정말 미치겠네.”
“여러 놈이 한꺼번에 올라타는 것은 아니겠지?”
‘한 놈이 올라타던 두 놈이 올라타던 더러워진 것은 마찬가지지.“
“아무리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라고 하지만...”

국무위원들의 이성을 잃은 발언 때문에 회의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비대위 멤버가 아닌 국무위원들도 많이 참석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도가 없어져 회의도 중구난방 일뿐 아니라 참석자도 기준이 없었다.
“비대위면 어떻고 국무회의면 어때? 지금 꼭 그걸 따져야겠어? 제, 제기랄...” 
술 취한 해군장관이 떠들었다.

“그럼 축소 국무회의라고 해둡시다. 의견이 없으시면 제가 결론을 내겠습니다.” 
총리의 말이 끝나자 조용해졌다.
“성유 국장을 단장으로 하고 합동 수사본부의 제3부장 신 대령을 대표로 지명하겠습니다.” 
“신대령이 누구야? 육군이야 해군이야?” 
해군 장관 박상천이 또 혀 꼬브러진 소리로 떠들었다.
“신동훈 육군대령입니다. 합동수사본부 제3부장이고 육군 특무부대에서 차출된 요원입니다.” 

성유 국장이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면 그렇게 가결 된 것으로 알고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총리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고 김 실장에게 말했다.
“빨리 대통령 각하와 통화하게 해주어.”
그로부터 정확하게 20분 뒤 민독추 집행위의 백 장군으로부터 총리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국무총리 좀 바꿔 주시오. 나는 백 장군입니다.” 
자칭 백장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렸다.
“내가 총리요. 백 장군 어서 말해 보시요. 아니 내가 먼저 묻겠소. 우리 국무위원 부인들은 무사하오?” 
“우리가 잘 모시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총리께서 결단만 잘 내리신다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아내 노릇 어머니 노릇 잘 할 겁니다. 그러나 국무위원 여러분이 미련하게 처신한다면...” 

“알겠소. 그래 요구사항은 뭐요?” 
총리가 백장군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쪽은 성유 국장과 또 한사람을 정했습니까?” 
“그렇소. 성유 국장의 비서나 보좌관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좋아요. 그러면 회담이 성립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시간을 바꿔도 좋습니까?” 

“말해 보시요. 처음엔 아침 7시 첫 출항 배라고 하셨지요?” 
“아침 일곱 시에는 유람선을 타는 손님이 너무 적어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오후 2시로 변경하려고 합니다. 오후 2시 정각에 여의도 선착장을 떠나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총리가 즉석에서 대답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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