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제의를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경고했지만 엉뚱한 일을 하시려고 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테니 이 경고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우리 사모님들이나 잘 모셔 주십시오.”  
“염려 마십시오. 그럼...” 

백 장군이 전화를 끊었다.
곧 총리실에는 성유 국장과 정채명 내무, 김교중 육군장관, 정일만 전 국장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그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길밖에 없는 가요?” 

총리가 정일만 전국장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그는 이미 현직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성 유국장이 대답을 했다.
“그들에게 끌려 다닐 수만은 없습니다.”
김교중 육군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잡혀있는 인질을 다 죽이고도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도 그들을 인질로 잡아야 합니다. 협상을 하자면 틀림없이 그들 중 핵심 인물이 나올 테니까 그자를 잡는다면 그들의 본거지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건 지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일 그러다가 일을 그르치면 스물 두 부인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정채명 내무장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말했다.
“이제 스물한 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명, 열아홉 명으로 계속 줄어듭니다.” 
김교중 장관이 목청을 높였다.
“그들이 유람선 위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난 뒤의 일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아무 말도 않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던 정일만이 입을 열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한강 복판에 떠 있는 유람선은 외부에서 함부로 공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이 타고 있어서 어떤 작전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놈들은 참으로 묘한 착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 대신 눈에 뜨이지 않게 강변에서 유람선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조치를 해 두어야 합니다. 유람선 내부에도 물론 감시 장치나 비상시의 대비책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정일만의 말을 들으며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변 양쪽에서 유람선을 계호하는 일은 김 육군 장관이 맡으시고... 내무부에서도 협력해 주시죠. 그리고 유람선내의 일은 성유 국장이 알아서 하십시오. 오후 두시까지면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나가서 일들을 하세요.”
“승객으로 가장해서 우리 측 요원을 태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유 국장이 제안했다.

“그건 의논 좀 해 보세요.”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두 따라 일어섰다. 그러나 김교중 육군장관은 못마땅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이튿날 오후 2시.
곽영도 경감은 시골 중늙은이로 변장을 하고 못생긴 중년 여자 한사람과 부부로 가장하고 유람선에 올랐다.

곽 경감은 2시 출발하는 배에 중년 여자와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올라탔다. 쑥스럽기 짝이 없었다. 곽 경감은 배에 오르면서 집에 있는 아내를 생각했다. 손잡고 외출을 해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낯선 여자와 손을 잡고 생전 처음으로 한강 유람선에 오르다 보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못생긴 중년 여자는 과거 정부의 첩보기관에서 일한 여자 같았다. 그러나 일단 시골 중늙은이의 아내 역할을 맡자 진짜처럼 잘 해냈다.
“넝감 이쪽이유. 이쪽...” 

여자는 어리둥절해 있는 곽 경감의 손을 이끌고 유람선 아래층 뒷자리로 갔다.
유람선 안은 평소 곽 경감이 강둑에서 바라보던 것보다는 훨씬 넓고 화려했다.
“아니 이곳은 2층이 있잖아? 우리는 어느 층이지?” 
곽 경감이 당황해서 말했다.

“넝감은 이층이 좋겠수? 이층에 가면 멀미 헐틴디유... 그래도 좋담 이층에 가봐유?” 
곽 경감은 이 배를 타기 직전 합동 수사본부 제3부에서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왔었다. 그의 역할은 끝까지 시골서 온 중늙은이 관광객 부부다.
여하한 경우에도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관찰해 두었다가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유람선을 처음 탔기 때문에 이 배가 2층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는 아래층보다 전망이 좋고 앞에는 반주를 하는 악단도 있었다. 아마 신나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것 같았다.
그들이 2층 의자에 앉아 올라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니 저 사람은...” 

승선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던 곽 경감이 갑자기 여자의 팔을 흔들었다.
곽 경감은 막 배에 오르는 수사본부의 신동훈 대령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디? 원숭이라도 배에 탔시유?” 

여자는 곽 경감의 실수를 숨겨주려는 듯 엉뚱한 소리를 했다. 곽 경감은 그제야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었다. 배에는 빈자리가 별로 없을 만큼 사람이 탔다.
2시 5분. 유람선이 서서히 한강 복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