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장군과 그 문제의 여인은 여의도 유람선 선착장에서 내린 뒤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일단 주차장 쪽으로 왔다. 그들은 여러 사람 틈에 끼여 자동차를 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즐비한 승용차중의 하나를 타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선착장 뒤 공사장처럼 보이는 곳에 서 있던 흙더미를 실은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그 큰 트럭이 쏜살같이 달려 고수부지를 빠져나갔다. 트럭은 뚝 위의 자동차 물결 속으로 파묻혀버렸다.

그러나 합동 수사본부 요원들에 의해 그 트럭의 행방은 계속 체크되었다.
트럭은 육삼빌딩 쪽에서 마포 대교 쪽으로 온 뒤 다리를 건너와 강북 강변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트럭이 한강 대교 밑에 도착 했을 때 트럭에 타고 있어야할 백 장군과 여자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곽 경감은 그 트럭의 번호판에 따라 차주를 찾아냈다. 그는 봉천동에 있는 차주의 집으로 찾아가 주인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어느 조그만 전문 건설업체에 차를 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운행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곽 경감은 다시 건설 회사를 찾아가 그 트럭의 운전사를 만났다. 갓 스물을 넘었을까 말까한 젊은이가 운전사였다.

“그날 말이죠. 가만있자. 그날은 억세게 재수 좋은 날이었어요. 이 이야기 우리 과장님이 알면 큰일인데...” 
그가 갑자기 무엇을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곽 경감이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자 말을 계속했다.

“그날 매일 하는 작업인 흙 나르는 일을 계속했지요. 올림픽 도로에서 여의도로 막 접어드는데 한 젊은이가 차를 세우더군요. 그러더니 이 트럭 지금부터 4시간만 빌리자고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그냥 웃었더니 그는 시간당 10만 원씩 주겠다고 하면서 80만 원을 내밀더군요.” 
“어떻게 생긴 젊은이였나요? 
곽 경감이 그의 말허리를 자르고 물었다.
“그냥 젊은이 에요. 머리를 짧게 깎아 군인들이 사복을 입은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래서 돈 욕심도 좀 나고... 사실 우리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뛰어 보았자 얼마 받는 지나 알아요?” 
그가 갑자기 엄살을 부리려고 했다. 아니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생활이 그렇게 고달플지도 모른다고 곽 경감은 생각했다.
“어서 그 다음 얘기나 해보아요.”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했지요. 그리고 고수부지로 내려가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두 세 시간 지나니까 낯선 남녀가 급히 올라타고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수부지를 빠져나와 도로로 나왔는데 신호등에 걸려 잠깐 서 있는 사이 그들이 없어져버렸더라구요. 별 싱거운 사람들 다 보았어요.” 
그 트럭 운전사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백장군의 행방을 찾는 일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그 트럭을 쫓고 있던 요원들도 그들이 중간에서 감쪽같이 없어진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던 것이다.

이들의 수사는 벽에 부딪친 것 같았으나 군 정보기관에서 새로운 소식이 왔다. 백 장군이라고 알려진 사람의 신원이 밝혀진 것이다.

전방의 한 정보 부대에서 보낸 보고에 의하면 그는 제1654사단 예하의 공병 여단에서 근무하던 백성규 대령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장군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 사회에서 그냥 애칭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즉시 백성규 대령에 대한 병적 카드, 복무기록, 주민등록 카드 등이 합동 수사부로 옮겨졌다. 유람선에서 채취한 그의 지문 대조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러 가지 증거는 그가 백성규 대령이 틀림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백성규 대령. 1970년 제3사관학교를 나와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 제대하지 않고 장기복무를 지원해 공병대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주로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육군 대령으로 작년에 예편. 가족 아내와 딸 하나.
이런 것이 그에 대한 대강의 이력이었다.
곽 경감의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백장군으로 알려진 백성규 예비역 대령에 대한 신원 수사가 그 것이었다.
추경감은 우선 백성규 대령의 제대 할 때 주소인 서울시 둔촌동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 아파트는 뜻밖에도 열 두 평짜리로 낡은 집에 영세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육군 대령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하자면 아파트촌의 달동네였다.
곽 경감은 백대령이 사는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계단도 낡고 지저분할뿐 아니라 연탄재와 구질구질한 살림도구들을 쌓아 놓아 올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계십니까?” 

곽 경감은 5층 8호실 앞에서 현관문을 뚜드리며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곽 경감이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그냥 열렸다.
“여보세요.” 
라면 박스 같은 것이 잔뜩 쌓인 거실 겸 부엌을 둘러보며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뉘시요?” 

한참 만에 방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다리를 절룩거리는 노인이 나왔다. 피골이 상접해 해골만 남은 것 같은 노인의 모습은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뒤이어 머리만 커다란 영양실조의 어린이 두 명이 노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겁에 질린 채 빼꼼 내다보았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곽 경감이 현관에 선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현관에는 다 해어진 어린이의 신발이 잔뜩 있었다.
“말해보슈.” 

노인이 절룩거리는 다리를 두어 발자국 옮겨 종이 박스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여기가 백 성규 대령의 집인 가요?” 
“백성규 대령?” 
“예.” 
노인은 처음 듣는 말이란 듯이 눈만 껌벅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령이 아니고 백 장군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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