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만 전 정보국장이 열을 올렸다. 정일만 전 국장은 정보국장에서 해임된 이후 비교적 말수가 적었으나 이 일에만은 흥분을 하고 나섰다.
“말도 안돼요. 내가 친척 명의로 어마마한 재산이 있다고? 부자 친인척 둔 것도 잘못이야?” 

박인덕 공보처 장관이 이어서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명색이 교회의 장로인데 이렇게 터무니없는 모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국무 회의 때는 비교적 조용히 앉아만 있던 홀아비 원자력 장관이 복잡한
여자관계의 지적에 흥분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펄펄 뛰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꺼림직한 점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모든 조사를 했는가 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이 자료가 거의 엉터리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진실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자료가 엉터리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자료가 매스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통령 각하에 관한 터무니없는 가짜 정보는 절대 유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유 정보국장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42>응접실의 번개정사

“그것도 중요 하지만 이 자료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유출되었나 하는 점이 문제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자료는 우리 정보 기관들이 수집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박상천 해군 장관이 몇몇 장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 그럼 장관님은 우리가 이 것을 유출 시켰다고 생각하는 거요?” 
조민석 육군 정보국장이 볼멘소리를 했다.
“누가 유출시켰느냐가 지금 문제가 아니오.” 
김교중 육군장관이 은근히 조국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 것이 우리 정보당국에서 유출되었다면,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요? 무슨 말들을 그렇게 해요?” 

고일수 법무장관이 삿대질을 하면서 떠들었다.
그때였다. 김영기 총리 비서실장이 긴장된 얼굴로 들어왔다. 그가 총리의 책상 앞에 메모지를 내 놓았다. 메모지를 본 총리가 긴장한 얼굴로 일어섰다.
“토론들 하고 계십시오. 잠깐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기서 함께 의논하시지요.” 

정채명 장관이 말했다. 그는 워낙 거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총리도 선배 대접을 깎듯이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때로는 점잖게 총리를 나무라기도 했다.
총리는 들은 척도 않고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 그는 밖으로 나가 자기가 직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수화기에 나왔다.
“각하 저놈들이 일을 또 저지를 모양입니다.” 
그는 한마디하고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소위 민독추 위원장 이름으로 내 외신 기자회견을 야당 당사에서 가지겠다고 합니다.” 
그는 다시 땀을 닦고 대답했다.
“전번 한강 유람선에서 보낸 공개 자료를 공개하여 부도덕 정권의...”
그때 수화기에서 옆에 있는 사람도 들을 정도로 큰 소리가 흘러 나왔다.
부도덕 정권이라는 말에 대통령이 화가 난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모래까지 자기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예. 모래까지 자기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인질 중에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총리의 목소리는 약간 떨려 나왔다.
그로부터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 공보비서관이 갑자기 기자 회견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내각이 심기일전하여 일하는 자세를 갖추고 대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개각을 오늘 날짜로 단행합니다.” 
그는 조금 뜸을 드린 뒤에 발표문을 읽었다.
“국무 총리에 김교중 전 육군장관, 육군장관에는 정일만 전 내각 정보국장. 이상입니다.”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는 돌연한 개각이었다. 공보 비서는 기자들의 질문을 거절한 채 회견실에서 나가버렸다.
대통령의 이러한 엉뚱한 인사는 내각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총리 부인도 지금 인질로 잡혀 있는데 경질을 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지만, 김교중 장관을 총리로 발탁한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려운 인사였다. 더구나 정일만 전 정보국장을 육군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내각 내부뿐 아니라 매스컴 쪽의 반응도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해프닝은 효과를 가져 온 측면도 있었다. 민독추의 백장군으로부터 성유 국장에게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총리를 바꾸셨더군요. 국회 동의를 아직 얻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총리 서리겠지요. 우리는 이러한 조그마한 움직임을 우리에 대한 성의로 인정하겠습니다. 다음 전 내각이 물러 날 때는 총리서리가 부담을 덜 느낄 테니까요. 그러나 정일만씨 같은 파렴치한이 육군장관이 되는 것은 유감입니다. 어쨌든 내일 기자회견 하는 것은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대신 모래까지 현 내각의 부도덕성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든 국민에 대해 고백성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보세요. 백장군...” 
그러나 백장군의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겨버렸다.
비대위 합동 수사본부에서는 그의 전화가 어디서 걸려 온 것인가를 추적해 내는데 성공했다.

백장군의 전화는 광화문 우체국 옆의 공중 전화였다. 그 곳을 재빨리 수색했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조치로 그들의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막는 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두 번째 희생자를 막기 위한 대책이란 아무 것도 세우지 못했다.

김교중 총리는 취임 첫 조치로 비대위를 확대 개편하여 전 국무 위원과 내각 정보국장, 육군정보부장등을 포함시키는 조치를 했다.
“저 자들이 내각이 총사퇴 하더라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명분 축적용으로 자꾸 국무위원들의 개인적 비리를 조작 폭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꼭 조작했다고 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