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저분한 소문에까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변 사장은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글쎄요? 그럼 이런 사실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미스 구는 분명 변 사장님 밑에 있다가 지난 겨울 인사개편 때 이이사님에게 보내진 것으로 아는데요?”
“그래요.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까요? 미스 구가 뭔가 특별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이 있나 보죠?”
“아니오. 미스 구는 아주 영리하고 일처리가 야무진 비서였습니다.”
“인사 기록에도 그렇게 나온 것 같더군요.”
추 경감은 새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런데 왜 이이사님에게로 보냈습니까?”
변 사장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씀하시기 난처하시다 이거죠? 제가 그럼 이야기하지요.  변사장님은 이 이사님이 경리에서 모종의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고 계시지요? 아니, 믿고 있는 단계가 아니라 확실한 것이지요. 이이사가 마약 중독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떵떵거리는 재부를 유지하는 것만 보아도 말입니다.”
변 사장의 얼굴에 심히 괴로운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오랜 세월 같이 일해 온 동료를 쫓아내고자 경리 감사를 시행하는 것도 맘에 걸리셨겠지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미스 구를 보내신 겁니다. 제 말이 맞지요?”
변 사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그런데 미스 구는 오히려 이이사의 부정을 돕기 시작한 거로군요.”
“아닙니다. 제가 그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하,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비밀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변 사장은 그래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침내 한숨을 길게 쉬더니 말을 꺼냈다.
“미스 구는 아마 뭔가를 알아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이이사가 입막음을 할 생각으로 미스 구를 겁탈한 것 같아요. 그러자 미스 구는 이이사 쪽으로 돌아서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예. 둘 사이는 좋은 것 같지만 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지요. 결국 둘을 묶고 있는 건 돈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예리하고 냉철한 미스 구가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는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요.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합니다.”
“경감님은 뭔가 다른 것을 알고 계신 듯 한데 가르쳐 주시지요.”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추 경감은 두 팔을 들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오늘 밤이 지나면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낼지도 모르지요. 변 사장님, 하지만 그건 오늘 밤이 지날 때까지는 비밀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정말 궁금하군요. 빠른 시일 내에 범인을 잡으실 수 있다는 뜻이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그건 꼭 그런 뜻은 아니지요. 하지만 범인은 두 개의 단서를 우리 손에 놓고 갔으니 조만간 잡을 수는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예? 두 개의 단서라고요?”
변 사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예. 때가 되면 그게 뭔지도 밝히도록 하지요.”
“지금은 비밀입니까?”
“비밀이 아니라 아직은 단서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것 참, 알쏭달쏭한 말씀만 하십니다.”
추 경감은 그 말에 빙그레 웃었다.

“참, 한 가지 더 여쭤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시지요.”
“미스 구가 꽤나 차려 놓고 산다는데 무슨 까닭인지 아십니까?”
“이이사가 사다 준 것이겠지요. 그런 것이 아니면 미스 구의 마음을 묶어 둘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왠지 그런 것 같지가 않군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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