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순경을 시켜 사람이 숨어 있지 않다는 것은 확인을 한 바 있었다.
그리고 만일을 위해 배양실 직원들마저도 밖에서 기다리라 했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강 형사가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배양실험실은 무균실이기 때문에 그냥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밀폐된 준비실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전신을 소독하고 투명 비닐 포장지를 덮어 써야 한다. 얇고 투명한 전신포장지는 마치 옛날의 도포 같았다. 발도 신발을 벗은 뒤 얇은 비닐로 된 세균차단 양말을 신어야 한다.

강 형사가 이런 준비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룻바닥의 보송보송한 촉감이 발바닥에 전해져 왔다. 강 형사는 몹시 긴장했다. 여기에 장이사를 죽일 무슨 트릭이 있다면 모르모트가 된 자기가 먼저 당하기 때문이다.

  강 형사는 조심조심 한 발자국씩 옮겼다. 장 이사는 뚜벅뚜벅 걸어와 복잡한 장치로 되어 있는 기계 한가운데 섰다.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강 형사가 일단 안심을 했지만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생각이고 뭐고 있나요. 우선 배양물의 세포접합이 잘 진행되고 있는가를 보는 거지요. 바로 저기 저 현미경으로 보는 겁니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예. 좋으실 대로.”
강 형사는 장 이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마치 쌍안경처럼 되어 있는 곳에 눈을 대어 보자 빨갛고 파란 현란한 색이 왈칵 눈으로 무너졌다.
“정말 예쁘군요.”

“허허, 살아 있는 생명이란 아름다운 법이죠.”
장 이사는 그렇게 말하며 강 형사 쪽으로 다가왔다. 마룻바닥의 진동이 그대로 강형사에게 전달되어 왔다.
“장이사님, 여기서 뛰기라도 하면 배양실이 무너지겠습니다.”
강 형사는 농담을 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마룻바닥이 한 10센티는 들어간 것 같죠?”

장 이사도 농담으로 받았다. 사실 장 이사가 걸을 때마다 마룻장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조금씩 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건, 윽!”
현미경을 들여다보기 위해 강 형사가 방금 있던 자리에 선 장 이사는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며 왼쪽 발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바로 눈이 홱 돌아가더니 몸이 뻣뻣이 굳어 버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장 이사님, 장 이사님!”
이미 굳은 장이사를 흔드는 강형사의 뇌리에 3시 이후의 죽음이라는 섬뜩한 전율이 흘렀다.
  곧 추경감과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도 배양실 직원들의 간곡한 만류에 의해 모두 소독을 하고서야 들어올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추 경감의 호통은 일종의 배신감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형사가 옆에 붙어서서도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 이사는 제가 밟고 다닌 곳만 걸어 다녔고, 경감님도 보시다시피 이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강 형사는 말을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 이사의 사체를 내가고 있었다. 그런데 현미경이 있는 그 밑의 마룻바닥에 붉은 피 한 방울이 얼룩져 있었다.
“경감님, 저것 보세요!”
추 경감이 눈을 돌렸다.
“뭐 말인가?”

“아아, 바로 저거였어요. 제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군요.”
추 경감은 뚱한 표정으로 강 형사를 계속 바라보았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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