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강 형사. 범인이 우리에게 떨어뜨린 단서가 생각나지 않는가?”
“예? 단서라니오?”
강 형사는 점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김 박사가 죽었을 때 나온 쪽지.”

“죽고 싶다. 명예, 부,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되어 있었죠. 그리고 장 이사에게 배달된 편지.”
“<나는 25일 오후 3시 이후 죽는다.>”
“그래, 바로 그렇게 되어 있었지.”

추 경감은 강 형사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꽤나 즐거운 폼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그 글자들이 뭘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기억나나?”
“신문활자 아니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봐, 강 형사. 자네 우리나라에 신문이 몇 개나 있을 것 같나?”
“글쎄요, 전 잘 모르겠지만 전국지는 몇 개 안 될 것 같네요.”
“응. 전국지로 조간이 세 개, 석간이 세 개, 스포츠 신문이 두 개, 경제지 두 개, 영자신문 두 개가 있지. 겨우 이 정도가 평소 우리가 만나는 신문이야.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 신문들의 활자가 죄다 틀린다는 사실이지.”

“아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그 쪽지의 활자를 분석해 보면 무슨 신문인지 알 수 있다 그거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럼 범인은 누구입니까?”
“그게 아직은 불확실하네. 혹시 범인이 보다 고단수의 술책을 쓰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제 수사의 방향은 잡을 수가 있겠군요. 도대체 누굽니까?”
강 형사의 재촉에 추 경감은 빙긋이 웃으며 몇 장의 사진을 꺼냈다.
“바로 이 사람일세.”
강 형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배양실에 드나든 사람, 혹은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조사해 보도록 하세.”

“휴우, 오늘도 꽤나 더운 하루가 될 것 같군요.”
강 형사가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았다. 무진의 내부는 냉방이 아주 잘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배양실의 경우는 경비가 엄중하였다. 드나드는 사람은 일일이 체크가 되고 또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 않겠어요?”
강 형사가 배양실 주임 최 병탁에게 물었다.

“예. 어쩌다 그런 경우가 있지요. 외국 학자가 온다든가, 귀빈으로 이사님들의 안내를 받을 땐 예약 없이 들어갈 수도 있지요. 지난번 강형사님 같은 경우는 정말 특별 중의  특별이었습니다.”
“그럼 이사님들은 제지 없이 드나들 수가 있습니까?”

“장 이사님하고 김 박사님은 가능했지요. 그분들은 우리 팀의 지휘대니까요. 다른 분들도 우기면 뭐 가능하기야 하지만 그럴 볼일이 계시지도 않고 또 몰상식하게 그러시지도 않지요.”
“그럼 드나든 사람들은 모두 기록에 올라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여기 한번 보시지요.”
최 주임은 갱지로 만들어진 책자를 건네주었다. 날짜별로 사람 이름과 체류 시간이 적혀 있고 숙직자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최 주임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상주하십니까?”
“아니오. 저도 여기에 다 기재를 합니다.”
“그건, 이상하군요.”
강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 장부를 관리한다는 말이지요? 그 관리자는.....”

“조작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말씀이지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 장부는 둘이서 관리를 하도록 되어 있어요. 예약된 것과 찾아오는 것 모두가 관리되지요. 이 장부의 담당자는 제가 아닙니다. 1차로 김형일이라는 사람하고 2차로 오경석이라는 사람을 거쳐 가게 되어 있지요. 아무도 기재하지 않고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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