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한 흉기는 뭐야?”
“검시의 말로는 예리한 칼 같다고 합니다. 배와 가슴 등 세 군데를 찔렸는데
심장을 찌른 것이 치명상 같다고 합니다.”
“현장에 없었습니다.”
“배향림과 특별히 친하게 지낸 사람이 이 아파트에 있나요?”

추 경감이 천병일을 보고 물었다. 천 씨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남의 사생활을 잘못 말했다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괜찮아요. 아무도 당신이 죽은 사람 흉보았다고 욕하진 않을 거요. 당신이 입을 여는 것은 수사 협조로 범인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돼요.”
강 형사가 천병일을 설득시키려고 애를 썼다.
“가깝게 지낸 사람이 몇 사람 있어유. 16층에 사는 강명춘 씨, 15층의 백태균 또 강명춘 씨 사모님.......”
“좀더 자세하게 얘기해 봐요.”

“조형래 씨나 백태균 사장님에 대한 건파출부 경숙 씨가 더 잘 아는데.......”
“당신이 아는 것부터 이야기해 봐요.”
추 경감은 계속 쭈볏쭈볏 하는 천병일을 독촉했다.
천병일은 단념했다는 듯 이야기를시작했다.
죽은 배향림과 같은 층에 사는 조형래는 미국서 오래 살다가 왔다고 한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간 집의 외동 아들로 미국회사의 한국지사에 중역으로 나와 있었다.

16층에 사는 강명춘 씨는 30대 초반의 스마트한 회사원이다. 그는 국민학교에서 전자회사의 말단 직원이었다.
키가 크고 눈도 큰 미남형으로 생겨 여자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죽은 배향림과는 특별히 가까워 아파트 단지 안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아파트 내의 등산 모임인 은파산악회 간사들이라 자주 만나고 휴일엔
등산도 자주 다녔다.
“글씨 한번은 말입니다.......”

천 씨가 한참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수사에 도움이 된다니까 말씀인디유...... 한번은 지가 순시를 나가려고 엘레베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자 안에서 글씨, 엘레베타 안에서 글씨 배향림이 하고 강명춘 씨가 뽀뽀를 하느라 서로 부둥켜 안고 문 천 씨는 무슨 죄라도 짓는 듯 옆을 흘끔흘끔 보면서 말했다.
“뭐요? 강명춘 씨와? 그 사람은 마누라가 있다면서?”
강 형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마누라 있는 사람은 연애도 못 하나유 뭐.”
천병일이 강 형사의 말을 반박했다.
“그것을 강명춘의 아내도 눈치채고 있나요?”
“아니지유. 아파트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등잔 밑이 깜깜하다고 그 선생님만은 몰라유. 가평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쯤 집에 오거든유.”
“그리고 백태균 사장은?”

“백 사장님은 쉰이 훨씬 넘어 환갑이 가까운 점잖은 분이여유. 몇 년 전에 상처를 하고 혼자 사시는데 가끔 배향림 씨와 같이 그랜저를 타고 나가는 것을 봤시유. 같은 15층에 사니까 자주 만나는가베유.”
천병일의 이야기를 대충 들은 추 경감은 강 형사한테 주변 인물에 대해 더 캐보라고 명령했다.
추 경감은 천병일이 지적한 강명춘, 백태균, 조형래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작정했다.

우선 배향림과 같은 층에 있는 조형래의 집을 찾아갔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파출부인 경숙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전 시경 강력계에 있는.......”
“형사 나으리시군요. 오케이. 뭐든지 물어보셔요. 미스 배에 관한 것이라면 아는 대로 대답하지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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