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는 의외로 시원스럽게 나왔다.
“뭐 별로 물어볼 것이 없군요. 꼭 한 가지만 여쭤 보겠어요.”
“예.”
조형래가 미소를 띄우며 추 경감의 심각한 모습을 건너다 보았다.
“미스 배와는 어떤 사이였습니까?”
“이웃집, 사이좋은 이웃집이죠.”

“옆집에 그냥 살아도 잘 몰랐는데 한 두어 주일 전 동네 테니스 코트에서 인사를 하게 되었지요. 미스 배는 마음씨도 곱고 붙임성이 있어 사람들과 잘 친해져요. 저하고는 최근 레스토랑이나 나이트 클럽 같은 데 몇 번 같이 갔었어요. 그런데 누가 그 아가씰 죽였어요? 나를 용의자라고 생각하나요?”
조형래는 거리낌 없이 시원시원하게 말을 했다.
“아, 아닙니다. 선생님이 용의자라는 건 아닙니다. 집이 아주 잘 꾸며졌군요. 좀
구경해도 됩니까?”

추 경감은 거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급 가구와 진품인 듯한 유명화가의 유화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구경이라고 해도 좋고 수색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절대로 수색은 아닙니다.”
추 경감은 목욕탕, 부엌 등을 돌아보며 말했다. 구석구석이 정갈하게 정리가 잘 돼 있었다.

추 경감은 안방 침실을 맨 나중에 들어가 보았다. 아직 파출부가 정리를 하지 않아 시트가 구겨진 채 침대 위에 얹혀 있고 바닥엔 잠옷이 버려져 있었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창문을 내다보려고 걸어가던 추 경감은 방바닥에 칼이 한 자루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끝이 날카로운 등산용 칼이었다.
칼이 놓인 바닥엔 물컵을 쏟은 듯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칼을 집어 올렸다. 지문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추 경감은 칼을 들고 거실로 나오며 조형래를 보고 물었다.
“이 칼 선생님 겁니까?”

조형래는 손수건에 싸인 칼을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파출부 아줌마한테 물어보죠.”
그때 경숙이 마침 거실로 나왔다.
“아줌마 저 칼 우리 거요?”
조형래가 물었다.
경숙은 칼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 칼이 왜 침실에 있죠?”
조형래가 깜짝 놀라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제 칼도 아닌데...... 어디에 있었습니까?”

조형래가 침길로 들어갔다. 추 경감은 침대와 창틀 사이 칼이 있었던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왜 물이 쏟아져 있습니까? 그 물 위에 칼이 있었어요.”
“그것 참 이상합니다. 아줌마, 침실에 웬 물이에요?”
조형래는 오히려 경숙을 보고 물었다.
추 경감은 열린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는 15층. 밖에서는 도저히 칼을 집어넣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어젯밤 몇 시에 들어오셨나요?”
“도어는 잠그고 주무셨나요?”

“물론입니다. 이 집은 카드식 컴퓨터 열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현관문을 열지 않고는 이 방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파출부 아줌마가 왔을 때 제가 열었으니까요.”
“새벽에 파출부 아줌마가 온 뒤 누구 들어온 사람은 없습니까?”
“없어요. 제가 들어온 뒤 현관문은 자동으로 잠겼거든요.”
경숙이가 대답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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