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명춘인가 하는 기생 오래비 같은 젊은이하고 배향림은 아주 붙어 살다시피 했다더군요.”
“......?”

추 경감은 빙그레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대단히 호기심이 있는 모양이다.
“경숙이는 원래 조형래 씨 집 일을 봐주러 다니는데, 낮에 한 시간씩은 강명춘 씨의 아파트에 들러 일을 해준다고 2,3시께 그 집에 들러 설거지며 양말 빠는 일 등을 해주고 간대요. 그 집 아파트는 카드열쇠가 아니고 그냥 열쇠인데 열쇠 하나를 아예 파출부가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추 경감이 재촉하자 강 형사가 신이 나서 들은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한 달 전쯤 어느 날 파출부 경숙이 조형래 씨 집 일을 대강 끝내고 강명춘 씨의 아파트로 갔다. 여느 때처럼 문을 따고 들어서자 어디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파출부는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거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참으로 희한한 소파 위에서 강명춘이 발가벗은 채 한참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배향림은 이제 막 엑스타시를 경험하고 있는지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강명춘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배향림을 공격하고 있었다.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람!

경숙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파출부 경숙은 그와 비슷한 광경을 조형래의 아파트에서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열흘쯤 전 언제나처럼 새벽 5시 반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복도에 내렸는데 배향림이 잠옷 차림으로 조형래의 들어가더란 것이다. 새벽 5시에 처녀가 독신남자 아파트에서 잠옷 바람으로 나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 참 맹랑한 아가씨군. 아래 위층에 애인을 두고 즐겨?”
추 경감이 괜히 분해서 입술을 실룩거렸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정 이러시면 무고죄로 당신들을 고소하고 말겠어요.” 

강 형사를 따라 들어온 강명춘은 서슬이 퍼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채우고 데리고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강 형사가 강명춘을 추 경감 앞에 앉히고 담배를 피워물며 말했다.
“강명춘 씨, 당신은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합니다.”
추 경감이 나직하게 말했다.
“뭐라구요? 허허허.”

강명춘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두 손을 벌리고 웃었다.
“왜 죽였어요?”
“누가 누굴 죽여요?”
“배향림을 왜 죽였느냐니까. 유부남이 처녀를 실컷 농락한 뒤에 결혼하자니까 귀찮아서 죽여 버린 것이지? 그리고 조형래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칼을 조형래의 침실에 집어넣은 것이지?”

“걔는 본처하고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하는 그런 치사한 여자가 아니예요. 즐길 때는 서로 부담없이 즐기고 돌아서면 남이 되는 그런 깨끗한 아이예요.”
“아래 위층에 애인을 두고 즐기는데 깨끗한 여자야? 요즘 젊은이들의 모럴은 그런가?”
추 경감이 주먹으로 강명춘을 쥐어박을 듯이 하며 말했다.
“경감님. 생각해 보세요. 미스 배는 그날 밤 2시쯤 돌아와 15층에 내린 뒤 피살되었습니다. 저하고는 만난 일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제비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 칼을 조형래의 침실에 가져다 놓습니까?”

새도 모르는 꾀를 생각해 냈지만, 나를 속이진 못해. 당신은 그날 밤 배향림 씨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몇 시에 퇴근하는가를 물어서 알아냈지. 그리고 새벽 2시께 복도에 가서 배향림이 오기를 기다렸던 거야. 마침내 배향림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다짜고짜 배향림을 칼로 찔러 쓰러뜨렸지. 그리고 계단을 통해 16층 당신 방으로 돌아가 칼을 대강 씻어 지문을 지운 뒤 그것을 바로 아래층에 있는 조형래 씨 침실에 집어넣었지.”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뭐 오랑우탕인가요? 아무리 바로 아래층이지만 칼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까?”
“칼에 실을 매가지고 늘어뜨린 뒤 끝이 났다. 들어가게 한 것이지.”
“그럼 그 실은 조형래 씨가 풀어 주었습니까? 아니면 칼에 실이 묶여 있었나요?”
강명춘이 비웃듯이 말했다. 

“실 대신 물이 고여 있었지. 얼음 녹는 물 말이야. 당신은 얼음을 길죽하게 얼려 가지고 칼자루와 함께 실에 묶은 뒤 아래층 방안에 집어넣었어. 한참 뒤 얼음이 녹았겠지. 얼음이 녹으면 묶었던 실은 헐거워져 그냥 빠져나오게 돼. 방바닥에 물이 묻어 있었던 건 그 때문이야.”
“지독하군요.”
강명춘은 마침내 항복을 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등산칼과 꼭 같은 것을 하루 전날 단골 등산용품 가게에서 죽였어?”

추 경감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말했다.
“그런 여잔 죽어야 합니다. 날 배신하고 15층의 조형래라는 사기꾼 놈을 좋아하다니요. 처음엔 말로 타일렀습니다만, 그 연놈은 말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두 사람을 다 지옥에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거죠.”
추 경감은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감님, 이 사건을 모리무리 세이찌라는 작가가 쓴 <인간의 증명>이란 추리소설과 비교해 봤어요? 엘리베이터 속의 살인 사건 말입니다.”
강 형사를 내려다보며 추 경감이 대답했다.
“자네 이제 추리작가가 되려고 하나?”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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