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가로수길 역사 속으로 잊힐까… 발걸음 줄었다
강명구 도시공학과 교수 “상권 흥망성쇠, 자연스러운 현상”

경리단길 상권. [박정우 기자]
경리단길 상권.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유명 ‘핫플레이스’ 상권이던 신촌, 경리단길, 가로수길에 공실이 즐비하며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주요 소비층 수요 패턴의 변화로 인해 찾는 발걸음이 줄은 반면, 상권 활성화 당시 올라버린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는 셈이다. 그에 반해 최근 트렌드를 파악한 용리단길과 성수동은 신흥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상권의 몰락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성동구는 자구책을 펼치며 성수동 상권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강명구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상권 부흥과 쇠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경제적인 메커니즘”이라며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봤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상권들이 힘을 잃고 있다. 대표적으로 ‘핫플레이스’라 불리던 ‘신촌’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신촌은 인근에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들이 모여 있어 대학생 유동인구가 많은 젊은 상권으로 꼽혔다.

‘젊음의 성지’에 걸맞게 인근 지역은 당시 트렌드를 반영하는 브랜드들로 채워졌다. 스타벅스가 그 예시다. 한국 진출 25년 만에 매장 수 1900여 개를 달성한 스타벅스의 시작도 신촌 이화여대 앞이었다.

이밖에 ‘크리스피크림 도넛’, ‘투썸 플레이스’, ‘미스터피자’도 신촌에서 1호점을 냈고, ‘롯데리아’와 ‘버거킹’이 들어오며 신촌은 브랜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시를 빛냈던 대형 브랜드들은 현재 자취를 감추고 있다.

크리스피크림 도넛 1호점은 2017년 영업을 종료했고, 맥도날드는 영업 시작 20년 만인 2018년 사라졌다. 투썸 플레이스와 롯데리아도 각각 지난해 12월, 지난 1월로 폐점했다. 신촌 상권에 여전히 자리한 당시 브랜드는 스타벅스다.

코로나19와 대학생 이탈

대학가 상점들의 몰락 요인으로는 주요 소비층인 대학생들의 이탈과 임대료 상승이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며 학생들의 상권 이용이 급격히 줄었다. 이런 수요 감소는 엔데믹 이후에도 회복되고 있지 않았다. 

이어 코로나19 당시 급격히 활발해진 배달 문화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인근 자취생들의 발걸음도 줄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신촌, 이대의 소규모상가 공실률은 18.3%였다. 전분기 22%보다 소폭 줄었지만, 전년 동기 9%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가 뛴 셈이다.

인근 홍대와 합정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9.8%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2.2%였던 것보다는 회복한 수치지만, 서울 전체 공실률이 8.4%인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상황은 아닌 셈이다. 아울러 지난해 2분기 공실률은 5.7%였으므로 계속 상승 중임을 알 수 있다.

소비층 감소는 상권 활성화로 인해 임대료가 높아진 상황에서 상인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소비층 회복이 계속 이뤄지지 않으며 상인들은 상가를 나가게 됐고, 새로운 임차인은 들어오지 않아 공실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이 활성화하면 임대인들은 임대료를 올리다가 소비층이 감소하면 자영업자 임차인들이 나가면서 일대가 공실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상권 쇠락 용산구 경리단길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 위치한 경리단길은 대표적으로 상권의 흥망성쇠가 발생한 곳으로 여겨진다. 경리단길은 2010년 전후로 특색 있는 식당과 카페, 다채로운 상점이 들어서며 이목을 끌었다.

이후 망원동 망리단길, 연남동 연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등 새롭게 생긴 상권들이 ‘~리단길’을 붙이며 경리단길의 인기를 이어나가고자 하기도 했다. 이렇게 경리단길은 2030세대가 인산인해를 이루며 젊은 소비층의 여가를 책임지는 듯했다.

하지만 경리단길 유행 초기에 비교적 저렴했던 상가 임대료가 갑작스레 치솟으면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인들이 늘자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임대인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며 손해를 봤고, 빈 상가가 많은 경리단길로 더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지난 21일 취재진이 찾은 경리단길은 상권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경리단길 입구 위치한 스타벅스 외에 영업 중인 식당·카페는 드물었으며 인산인해를 이뤘던 예전과 달리 인적은 드문 편이었다.

인천에서 방문한 20대 남성 조 모 씨는 “이름만 듣던 경리단길을 한 번도 와보지 못해 오늘 방문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잘못 왔나 싶었다”라며 “사람도 없고 특색 있는 상점가도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경리단길 인근에 사는 50대 여성 박 모 씨는 “예전만큼 사람들이 안 온 지 꽤 됐다”라며 “간간이 외국인들이 오기는 하나 많지는 않다. 스타벅스 외에 가장 큰 카페도 가게를 내놓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근 용리단길의 부흥 소비층 흡수일까?

용리단길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 300m 남짓한 골목길로, 식당과 카페, 주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경리단길을 뒤로하고 용리단길이 신흥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으면서 상권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용산역 근처에 고급 주상복합 단지와 공원이 생겼고, 용리단길의 저렴한 임대료에 창업자들이 본격적으로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나아가 특색 있는 상점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상권 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인기 상권으로 자리매김한 용리단길은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늘었고, 기존의 공실들도 채워졌다. 서울시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용리단길을 포함한 인근 지역 유동인구는 2021년 4분기 1만3716명에서 2022년 4분기 1만6004명으로 1년 사이 17% 증가했다.

아울러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BTS가 속한 하이브 사옥, 대통령실까지 들어서면서 인근 상권이 더욱 활성화됐다. 높아진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용산구청은 용리단길 바로 옆 200대 규모의 대형 공공주차장 조성에 나섰다.

용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여성 김 모 씨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식당의 경우 웨이팅은 기본”이라며 “요즘에는 경리단길보다 용리단길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인근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존재감 잃은 강남구 가로수길

살아나지 못하는 지역으로는 경리단길 외에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이 꼽힌다. 2030세대가 선호하는 의류 브랜드 매장이 많아 ‘쇼핑하러 가는 곳’이라고 여겨지던 가로수길은 최근까지도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다. 

하지만 임대료 급등으로 인기 매장들이 철수하면서 존재감을 잃었고 다른 매장들도 타격을 입었다. 서울시 상권 월평균 매출액 분석에 따르면 가로수길은 2021, 2022년 모두 61만 원대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치가 41만 원대로 떨어졌고 순위는 무려 71위로 하락했다. 이에 정부, 서울시 등은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등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자영업자의 월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연 최대 9%에서 5%로 낮췄다.

일각에서는 가로수길을 두고 근처 압구정 로데오거리 선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로데오거리는 경리단길에 앞서 월세 상승으로 쇠락했지만, 2017년 상가 주인 10여 명이 모여 임대료를 30~50% 내리는 등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벌였고 회복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성수동 상권. [박정우 기자]
성수동 상권. [박정우 기자]

경리단길·가로수길 다음은 성수동?

성수동 상권도 임대료 상승이 나타나며 앞선 경리단길과 가로수길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1일 성동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간 성수동 상권은 인구, 매출 성장과 함께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 중이다. 2018년 평당 10만 원이었던 임대료는 2022년 15만 원으로 50%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매출이 25.6%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인상 폭이다.

이에 성동구는 성수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방지 정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우선 건물을 신·증축할 때 임대료 안정 이행 협약을 체결하면 용적률이 완화된다. 이어 프랜차이즈 신규 입점을 제한하는 등 관리 체계도 구축된다. 

아울러 현행 제도의 빈틈을 이용하며 임대료를 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비 규제안을 실시하고, 상가임대차 실거래가 신고 의무제를 도입한다. 나아가 성동구는 임대료 증액률 계산 방식을 개선하며, 임대료 상한제와 상가임대차 분쟁 조정 절차 참여 의무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권 흥망성쇠는 경제적 메커니즘”

지난 22일 강명구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 전역에 보면 장사가 잘되다가 안 되는 곳들이 계속 많이 등장했고 없어지기도 했다”라며 “이건 경제적인 메커니즘이지 이걸 문제라고 정의하는 건 희한한 현상이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부흥과 쇠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정부나 지자체가 무엇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정부가 정책을 수립한다고 상권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상권 활성화와 쇠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분석이 공존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연스러운 사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과하게 임대료를 높여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은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다.

건대입구 상권. [박정우 기자]
건대입구 상권.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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