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꿔”, “방으로 오라”…입에 담기 힘든 말 여럿

전 비서 측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전 비서 측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과 함께 온라인에는 각종 미확인 정보가 난무했다. 그중에서 가장 이목이 집중된 정보는 ‘박원순 시장 前 비서 고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정보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가졌으며, 언론인들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결국 해당 정보는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해당 정보 유포자를 추적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정보를 유포했을까. 

정쟁 거리로 전락한 가짜 고소장무분별 정보비난 잇따라

신상털기엉뚱한 사진까지‘2차 가해심각하다

진위부터 밝히자면 해당 자술서는 가짜다. ‘박원순 시장 前 비서 고소장’이라는 내용의 정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온라인 커뮤니티, 카카오톡 대화방 등을 통해 지난 10일부터 돌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이 알려진 지난 9일부터 온라인에는 각종 미확인 정보가 난무했다. 이 내용도 그중 하나다.

가짜 고소장 내에는 ▲고소동기 ▲피해 개요 ▲추행 내용 ▲사적 연락과 성희롱 ▲거부 의사표현 등과 함께 상세 내용이 담겨 있다.

마치 피해자가 직접 쓴 것처럼 유포된 가짜 고소장에는 “현재까지 박 시장에게 겪은 피해는 업무시간에 집무실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및 성희롱적 몸짓, 업무시간 외(늦은 밤)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음담패설과 본인의 속옷차림 셀카(셀프 카메라)를 보내는 것 두 가지”라고 적혀 있다. 박 시장이 “내 꿈 꿔”, “방으로 들어오라” 등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박 시장과 사적 연락을 하기 시작한 계기, 사적 연락에서의 성희롱 등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다.

가짜 고소장에는 기사에 담기 힘든 말도 여럿 있다. 말미에는 여러 피해를 겪으면서 ‘안전’, ‘공무원으로서 정체성’, ‘비서로서의 사명감’ 등이 무너질까 봐 두려움을 참았다며 나중에는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다고 밝힌다.

이런 가짜 고소장은 언론인은 물론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돌기 시작해 진위에 관심이 쏠렸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려...

온라인에서는 해당 정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여권 지지 성향에서는 ‘보수진영의 공세’라는 추측, 보수 지지 성향에서는 ‘여권의 눈속임’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일종의 ‘정쟁 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가짜 고소장의 진위, 유포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릴수록 전 비서에 대한 2차 가해는 심해졌다. 박 시장의 일부 지지자들이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 비서에 대해 일명 ‘신상털기’를 시작한 것.

박 시장 고소인 신상을 파악해 당사자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뉘앙스의 글이 SNS에 잇따라 올라왔다. 전 비서가 박 시장을 먼저 유혹한 게 아니냐는 글까지 나왔다.

박 시장의 전 비서로 추정된다며 엉뚱한 직원의 사진이 공유되기도 하면서 무분별한 정보와 비난을 그만두라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결국 전 비서 측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상에 떠도는 가짜 고소장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 비서 측은 “저희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문건이 아니다”,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문건 유포자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수사기관에 제출한 실제 고소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비서는 지난 13일 오전 2차 가해를 멈춰 달라며 관련자들을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다음 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특히 가짜 고소장과 관련해 유포자 처벌을 요청했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

4년간 지속됐다”

그렇다면 전 비서가 밝힌 진짜 입장은 어떠할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박 전 시장의 위력에 의한 비서 성추행 사건”이라며 “이는 4년간 지속됐다”고 밝혔다.

이어 “부서 변경을 요청했지만 시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본인 속옷 차림 사진 전송, 늦은 밤 비밀 대화 요구, 음란 문자 발송 등 점점 가해 수위가 심각했다. 심지어 부서 변동이 이뤄진 후에도 개인적 연락이 지속됐다”고 전했다.

이날 박 시장 전 비서 측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밝힌 고소 진행 경과에 따르면 전 비서는 피해 호소 이후 지난 5월12일과 같은 달 26일 대리인 측과 상담을 진행했다.

이후 전 비서 측은 박 시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지난 8일 오후 4시28분경 경찰에 제출했고, 당일부터 다음 날인 9일 오전 2시30분까지 밤샘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이 가운데 박 시장은 9일 숨진 채 발견됐다.

정진항 성북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가구박물관에 마련된 현장대책본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수색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0.07.09. [뉴시스]
정진항 성북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가구박물관에 마련된 현장대책본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수색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고소 내용은 박 시장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텔레그램 포렌식 결과물, 비서직을 그만둔 뒤 심야 비밀대화에 초대한 증거도 냈다”면서 “이날 오전에는 피해자에 대한 온‧오프라인상 가해자는 2차 가해 행위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서울경찰청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는 전 비서가 내놓은 첫 입장 대독도 이뤄졌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독한 전 비서 입장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련했다.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처음 그때 저는 소리를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긴 침묵의 시간에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 법의 심판과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며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샘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다”면서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11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서 시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시민분향소 조문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뉴시스]
지난 11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 [뉴시스]

성추행 고소는 ‘공소권 없음’

2차 가해 사건은 계속된다

기자회견에서 이 소장은 “곧바로 보고하지 못한 것은 내부에 요청했으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 업무는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화하는 반응에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면서 “거부나 문제 제기를 못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전형적인 직장 내 성추행임에도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 고소를 더 이상 못하는 상황이 됐지만,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 비서는 서울청에 박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박 시장의 사망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 상태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차 가해 관련 사건은 계속 진행될 전망이다. 서울시도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 진상규명에 나선다.

2차 가해가 확산하면서 전 비서와 연대한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는 상황이다. 일종의 피해자 연대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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