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동네 중고거래 사이트

[일요서울] 잘 생각해 보면 우린 모두 어린 시절 ‘작은 동네’에 함께 모여 살았다. 아랫집 영철이네 엄마가 고구마를 삶아 가져오면 우리 어머니는 갓 담은 깍두기를 건네기도 하고 누구네 엄마가 몸이 안 좋아 앓아누웠다 하면 죽을 쑤어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우리동네’였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 마켓의 줄임말이다. 2015년 7월에 창업한 당근마켓은 자본금 5억 원으로 창업 후 그해 10월 판교장터를 당근마켓으로 바꾸었다. 공동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카카오에 근무했을 때 사내거래 게시판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는데 ‘당근마켓’으로 변경한 후 판교를 넘어 ‘대한민국 온동네’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 창업 5년 만에 2천만 앱 다운로드 수 돌파한 커뮤니티 앱
- 국내 약 7000여 개...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41개 지역 확대


당근마켓은 내가 거주하는 동네를 기반으로 중고물품을 대면 방식으로 거래하는 커뮤니티 앱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2000만을 넘어섰다. 매월 당근마켓을 방문하는 사람(DAU) 또한 1000만 명 수준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앱 활성도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쿠팡이나 11번가와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뒤를 잇는 수치다. 지금까지 투자받은 금액만 해도 480억 원이며, 2019년을 기준으로 매출은 이미 7000억 원을 넘어섰다. 

투자 받은 금액만 해도 480억 원
 
그렇다면 네이버까페 중고나라를 비롯해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이 건재한데도 당근마켓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중고거래에 대한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중고’라는 단어는 남이 쓰던 물건, 헌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에 반해 지금은 효율적 소비를 위해 ‘중고’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또한 1인 가구 증가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환경 파괴를 고려한 재활용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버리기엔 아깝고, 다시 사용해도 문제 될 것 없는 물건을 누군가는 내놓는다. 비싼 새 제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럽지만 혹시 우리 집에 필요한 물건은 없나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당근마켓을 찾는다. 

당근마켓이 성공 궤도에 오른 진짜 이유는 접근성이 편리한 것도 한 몫 한다. 그간 중고거래는 포털의 까페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이 안에서는 개인보다는 업자들이 상위 노출을 독점하고 있어서 개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개인이 커뮤니티에서 중고 물건을 사고팔려고 해도 가입 인사, 몇 회 방문, 몇 번의 댓글을 남긴 후 지속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사용자의 인터페이스를 쉽게 만들었고, 역으로 업자(?)들의 활동을 강하게 억제했다. 기존 중고거래가 택배를 이용한 배송 때문에 피해 입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당근마켓은 대면을 통한 물품 거래방식을 택해 안전성을 높였다. 범죄 경력이 있는 휴대폰 번호나 계좌를 AI 머신러닝이 걸러냈고, 매너온도 및 사용자 후기와 평점을 통해 고객이 보다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었다. 

중고거래를 넘어 커뮤니티로

당근마켓은 거래 반경 기준을 6km 이내로 정했다. 물론 인구 밀도가 낮은 도심 외곽 지역은 이보다 넓긴 하지만 최대 12km를 넘어서지 않는다. 만약 거래 밀도가 높아질수록 이보다 반경이 더 줄어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반경을 더 넓게 확장하는 정책을 사용하려 하는데 당근마켓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더 반경을 줄였으면 줄였지 더 확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철저히 거주지를 중심으로 ‘우리동네 비즈니스’가 끈끈하게 정착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근마켓은 전국 약 7000여 개 동네 지역에서 오늘도 중고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국내를 넘어 미국과 캐나다, 영국의 41개 지역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앱에서 지역 커뮤니티로 확장되는 것도 주목할 만한데,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할머니에게 무료로 기타가 기증되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가 필요한 불우이웃에게 마스크를 전한 사연도 훈훈하게 알려지고 있다.

각 지역마다 거래되는 물품도 각기 서로 다른 특색이 있을 뿐 아니라, (동네 주민)에게 벌레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연, 하수구가 막혔는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괜찮은 업체를 소개해 달라 질문하는 내용 등 동네 안에서 서로 다양하게 소통하는 모습은 이미 중고거래 쇼핑몰을 넘어선 느낌이다. 

당근마켓이 성공한 차별 요인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것, 단순 물품 거래를 넘어 더 깊게 지역 내 커뮤니티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포털 등 기존 온라인 광고 단가와 비교했을 때에도 상당히 저렴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부담감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차별화된 것은 당근마켓이 철저히 사용자를 중심에 놓고 판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업자(?)가 물건을 올려놓고, 사용자가 수동적으로 물건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일반 사이트와 달리, 이용자의 자발적 적극성을 바탕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근마켓이 더 큰 비즈니스 모델을 욕심내기보다 더 작고 끈끈한 동네 커뮤니티로 판을 벌여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판이 동네 주민이 주인이 되는, 사람 냄새 그득한 시끌벅적한 장터가 되길 바란다면, 그것은 정말 무리일까 조심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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