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RA 이어 ‘엎친 데 덮친’ 유럽發 ‘인플레이션 법’

한-EU 통상전문가 간담회에 나서고 있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한-EU 통상전문가 간담회에 나서고 있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경제 침체가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그 시작을 알리는 경제성장률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경기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하는 가운데 수출이 내수와 동반하며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지난여름 미국發 인플레이션 관련 법안인 IRA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럽發 인플레이션 관련법이 다가올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유럽 내 생산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미국 IRA 맞서 대등한 입법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추진
美IRA 대응에 뒷북 친 국내 업계와 산업부 등 정부 부처 대응에 이목

수출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연말부터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11월 수출 증가율은 전년동월대비 14%로 수준으로 감소했다. 앞서 지난 10월 5.7%의 감소세를 보인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1월 수출 감소는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IT 제품 가격이 큰 폭의 약세를 보이면서 전반적인 수출 단가가 하락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對중국 수출이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0.8% 하락 이후 11월에는 25.5%까지 하락하는 등 심각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으로의 수출은 0.1% 수준 증가세를 보이긴 했으나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등 IT 품목의 수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수출 상승세를 불러올 요인이 당장은 없어 보인다. 

지난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인플레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량에만 세금 혜택을 적용키로 결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16일을 기점으로 북미에서 생산 및 조립되는 전기차에 한해서만 최대 7500달러의 세제를 지원한다는 IRA에 서명했다. 점점 수출이 줄어들 일만 남은 셈이다.

여기에다 내년 1월부터 일정 비율 이상의 미국 생산 배터리와 원료가 되는 주요 광물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적용할 예정. 미국에 아이오닉5, 제네시스 GV60, 코나EV 등을 수출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EV6 및 니로 EV 등을 수출하고 있는 기아에 비상이 걸렸다. 

문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발동 이후 우리 기업들이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서는 동안, 반대편에서 유럽으로부터의 인플레이션 관련법이 또 한 번 우리 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성장세를 노려온 현대기아차 그룹으로서는 타격이 크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발목이 잡혔다. 이에 정부가 나서서 한국 생산 제품에 대해 차별적 IRA 적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美 대통령을 만나 우리 기업들의 우려를 전했고,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러몬도 美 상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국산 전기차에 대해 미국산과 동일한 세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또 민간에서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나서서 미국자동차협회(AAI)와 IRA 현안을 두고 공동 대응 및 협의를 이어가기로 논의하는 등 각고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결국 현대차는 SK온과 미국에 합장 공장을 짓기로 협약했다. 오는 2026년 가동할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계획은 미국의 IRA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산업부 등 정부만 믿고 기다렸다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미국 시장 확대라는 귀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미국 대응하는 동안 EU도 나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럽에서는 미국의 IRA에 강한 유감을 드러내며 유럽發 IRA의 발동 가능성이 언급됐다. 지난 11월30일 미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워싱턴 DC 연방의회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의회 및 미국 기업들에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앞서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0월 올라프 독일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불공정한 IRA 발동에 대한 EU의 대등한 조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한 것과 관련이 있다. 두 정상은 미국의 IRA의 통과를 두고 ‘불공정한 경쟁 요소’라며 날을 세웠다. 

이와 관련 독일의 주요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11월29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EU는 IRA와 비슷한 조치로 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하베크 부총리는 “IRA 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입장과 공존할 수 없다”라며 “EU 자체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원자재 공금망강화 입법, 한국 정부 ‘부랴부랴’ 대응

앞서 지난 11월27일에는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 관련 입법 추진에 나서면서 이와 관련 각국의 의견 수렴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관계자들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입법에 대한 우려사항 전달에 나섰다. 

안 본부장은 지난 12월1일 EU집행위원회 및 현지 통상전문가들과 만나 CBAM 입법 현황과 이행입법 마련 계획을 문의하며, “CBAM이 WTO 등 국제 통상규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마련 및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전환기간에도 우리 수출기업에게 탄소배출량 보고의무가 발생함을 지적하며, 연4회 보고의무, 수입업자를 통한 보고 등 수출기업에 추가적 행정부담을 지우는 조항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전문가들과의 좌담에 참석한 안 본부장은 “30여 년간 유지돼 오던 WTO 다자통상 질서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를 드러내고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극복을 위해서는 다자무역체제 중심의 교역 확대 및 안정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표했다. 

한편 지난 11월30일 이창양 산업부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Valdis Dombrovskis) EU 통상 수석부집행위원장과 한-EU 통상장관 회담을 열고 EU의 핵심원자재법 관련 우리 정부와 기업의 우려를 번달하고 협력을 당부했다. 지난여름 미국의 IRA발동 이후 수습에 실패한 정부가 유럽으로부터의 인플레이션 관련법에는 ‘뒷북’ 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다. 향후 EU의 우리 정부의 요구에 대한 화답이 기대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