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인가?”
강 형사는 속으로 중얼댔다. 정황으로 보아 자살인 듯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김 박사의 핸드백 속에서 나온 쪽지였다. 쪽지에는 깨알같이 인쇄된 글씨가 한 줄 있었다.

- 죽고 싶다. 명예, 부,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경감님, 이건 유서 같은데요.”
“유서?”

추 경감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강형사가 쪽지를 건네주었다.
“이건 신문활자를 오려 붙여 문장을 만든 거구먼. 세상에, 유서를 이렇게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
추 경감은 담배를 꺼내며 계속 뚱한 표정을 지었다.
철컥, 철컥.

추 경감의 고물 지포라이터가 또 불꽃만 튀겼다.
“거 휴전선에서 주워 온 것 같은 고물 좀 버리시지요.”

강형사는 불을 붙여 주며 핀잔을 주었다. 추경감은 아무 말 없이 라이터를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이 이사님, 오늘 별장엔 누가 오자고 했지요?”
“제가 했습니다. 우리들은 주말이면 흔히 이곳 별장에 모여 토요일 하루를 보냈지요. 거의 관례입니다.”

추 경감은 거실로 발을 옮기며 계속 물었다.
“김 박사는 따라오기 싫어하지 않았나요? 오늘에 한해서 묻는 겁니다.”
“아닙니다. 오늘 김 박사는 신제품 개발이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평소에도 이곳에 오는 걸 좋아했어요. 뭐, 와서는 거의 혼자 있기 일쑤였지만.”
“아, 예.”

추 경감은 벗겨진 머리를 긁적거리며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거실에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잠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늘 김박사의 행적을 아는 대로 말씀해 시겠습니까?”

둘러 앉은 이들은 서로 눈치라도 보듯이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천 씨와 박 씨는 마치 죄라도 지은 듯이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아무 분이나.”

추 경감이 다시 재촉했다. 변 사장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누구라도 다 알지요. 회사일이란 뻔하니까요. 묘숙이는 오늘 아침 평소대로 7시 50분경에 출근을 해서 8시에 중역회의를 갖고 유전자 배양 공장에 들러서 12시 10분까지 있었어요. 그리고 12시 15분경에 장 이사하고 회사 앞에 있는 참치전문 일식집에 가서 참치구이 심을 먹었어요.”
“예.”

얼핏 보아도 이이사의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뚱뚱보 장 이사가 긍정을 표시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죠?”
강 형사가 물어 보았다.
“신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사과가 열리는 장미나무요?”

“예. 벌써 그것도 아셨습니까? 과연 형사님 이시군요, 허허.”
장 이사는 태연스레 농담을 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더니 분위기를 깨달은 듯 다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요......앗, 뜨거!”
추 경감은 다음을 재촉하다가 손을 흔들었다. 모르는 새에 담뱃불이 손가락까지 타들어 왔던 것이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계속 말씀해 주세요.”
신 웃음을 띠며 추경감은 또 지포라이터를 철컥거리고 있었다.
“예.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2시까지 사무 정리를 했어요. 2시엔 회의실에 모여서 자차를 마시며 잠깐 이사회를 열었지요. 10분도 안 걸렸을 겁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한 차를 타고 곧장 이리로 왔죠. 오자마자 우리 세 사람은 고스톱 판을 벌이고 김 박사는 옆방으로......”
“그게 몇 시쯤이었지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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