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형사는 묘한 웃음을 띠며 아파트를 나왔다.
시경으로 돌아오자 추경감은 몇 장의 자료를 건네주었다. 용의자들의 프로필이었다.

김묘숙⋯ 36살. 미국 R대에서 유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83년 귀국. 미혼.
변국보⋯ 52살. K대 화학공학과 중퇴. 77년 무허가 세진약품 설립. 79년 구속.2년형                선고. 81년 출옥. 유산균공장 설립. 83년 무진주식회사 설립. 사장에 취임. 2남 2녀.
장주석⋯ 44살. S대 식품공학과 졸업. KAIST근무. 83년 무진주식회사 입사. 80년 상처. 1녀.
이술균⋯ 49살. S대 경영학과 졸업. 77년 세진약품 경리부장. 변국보와 함께 향정신성               의약품 불법제조와 관련 1년 6개월 복역. 81년 유산균공장의 경리부장. 83년 무진주식회사 이사. 1남 1녀.

구연희⋯ 23살. Q대 비서학과 졸업. 85년 무진주식회사 입사. 미혼.
천경세⋯ 55살. 충남 Y고교 중퇴. 마약 밀수 혐의로 75년 체포.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78년 별장지기로 취직.

박인우⋯ 34살. 중학 중퇴. 83년 무진주식회사 입사.
나머지는 각 인물들의 주민등록 등본이었다. 강 형사는 먼저 구 연희 것을 찾아보았다. 부모는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다. 가족은 오빠가 하나.
“구 연희의 오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혹 아십니까?”
강 형사가 물었다.

“작은 광고회사의 샐러리맨이야. 뭐가 이상한가?”
“그 여자⋯ 너무 잘 살더군요.”

“이번 사건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자살인 듯 한데 자살이 아니라고 모든 정황이 가리키고 있단 말야. 뿐만 아니라 사인이 아리송하단 말야.”
추 경감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푸념조로 말했다.
“검시 결과만 나오면 윤곽이 잡히겠지요.”
강 형사도 푸념하듯이 말했다.

“자살이라면 참으로 이상한 자살이란 말야.”
추 경감은 또 불도 안 켜지는 지포라이터를 철컥거리고 있었다.
추 경감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강 형사를 바라보았다.

“어제 밤새도록 생각한 게 고작 장 이사가 수상하다는 거야?”
“예.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이 사건이 우발적인 자살이라면 장 이사는 결코 그런 식으로 태연하지 않았을 거다, 이겁니다.”
강 형사는 아직도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왜?”

“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
추 경감의 너무 냉랭한 태도에 강형사는 약간 시무룩했다.
“증거 있어? 변 사장의 말뿐이잖아.”
“그러니까 더욱 중요합니다.”
강 형사는 다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추경감이 <왜?> 하는 눈치로 턱을 치켜들었다.
“장 이사를 철저히 조사해서 객관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으면 변 사장은 제1의 혐의자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추 경감은 잠시 얼굴을 두 손 사이에 묻었다.
“강 형사. 김 박사가 그런 사실을 변 사장에게만 말하고 장 이사에겐 말하지 않은 채사랑만 했다면? 그래도 자네의 기밀한 추리가 성립되는 거야?”
강 형사는 한 대 맞은 얼굴로 추 경감을 쳐다봤다.
“그⋯ 그건 미처⋯”

“자넨 상상력이 지나쳐. 좀더 그럴듯한 생각을 할 수는 없어? 이 사건은 모든 사람이 수상 하거든. 무허가 약품회사를 차렸던 변 사장, 경리 부정을 일삼은 이 이사, 김 박사와 수상한 관계라는 장이사, 턱없이 잘사는 구 연희, 주사기를 가지고 거짓말을 한 천 경세까지.”
“예? 거짓말을 했다구요?”

“천경세에겐 손자가 없어. 그런데 주사기를 왜 갖고 있었을까?”
“그럼, 마약을 주사한 것이⋯”
“충분히 그럴 확률이 있지. 하지만 증거는 하나도 없단 말야.”
“케이스에 지문은 남아 있지 않았나요?”
“그렇게 털이 부숭부숭한데 지문이 남아?”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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