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사장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정말 인삼 캡슐 같은 건 싫은 모양이다.
“하하하, 어린애들 약투정 같군요. 저기, 김묘숙 박사의 방을 좀 보고 싶군요.”
강 형사는 공연히 큰소리로 웃었다.
“이쪽입니다.”

변 사장이 안내를 했다. 김묘숙의 사무실은 아주 깔끔하게 꾸며져서 그대로 주인의 성품을 알려 주고 있었다.
강 형사는 혹시 유서 같은 단서라도 발견할까 하고 샅샅이 방을 뒤졌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다섯 알을 먹은 인삼정제의 캡슐판을 서랍에서 찾아냈을 뿐이다. 

회사를 나온 뒤 강 형사는 김 묘숙의 집으로 갔다. 강남의 P아파트는 뜻밖에도 자그마한 18평짜리였다. 가정부 권씨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역시 하등의 이상한 점이 없었다.
“김 박사님은 언제 집에서 나갔습니까?”
“예, 그게 아마 7시 10분이나 됐을 것 같네유. 평소대로 손수 차를 몰고 가셨어유.”
“뭐 특별히 달리 보인 점은 없었습니까?”

“글씨유, 요즘엔 일이 잘 되시는지 늘상 기분이 좋으셨어유.”
뚱보 가정 도우미는 퉁퉁 부은 눈에 연신 손수건을 누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장 이사한테 오늘 점심 때 채였던 게 틀림없어.”
강 형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이사의 비서이며 오늘 유자차를 끓인 구연희(具然姬)를 찾아갔다.
구 연희도 같은 P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동은 틀렸지만, 경찰이라는 말에 연희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경찰이시라구요? 무, 무슨 일이죠?”
“알려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 형사는 파랗게 질린 미녀를 보자 우선 안심하라는 말부터 했다.
“김묘숙 씨를 아시지요?”
“예.”

“오늘 3시경에 돌아가셨습니다.”
“옛?”
연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질려 있는 표정이다가 그 표정은 마침내 울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래서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연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흐느꼈다. 강 형사는 작은 아파트 속에 가득 찬 구 연희의 사치에 어안이 벙벙 했다. 방금 보고 온 김  묘숙의 아파트에 비하면 너무나 도록 호화스러웠다.
“오늘 회사의 이사회에서 차와 인삼캡슐을 대접했더군요.”
“예. 그게 뭐 잘못되었나요?”

연희는 금방의 충격에서 벗어나 얼굴과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아닙니다. 그저 확인을 하는 거지요. 김박사님을 오늘 마지막본 게 언제였습니까?”
“한 2시쯤, 별장에 가기 위해 차를 탈 때뿐이었어요. 쭉 배양실에 계셨으니까요.”
“회의실의 유자차는 누구든지 열어 볼 수가 있는 것 같던데요?”
“예? 어머, 제가 그걸 안 치웠나 보죠? 원래는 비서실의 캐비닛 속에 넣어 두어요. 오늘도 거기서 꺼내 왔는데.”

“그럼 누군가가 내용물을 바꿔칠 수는 없나요?”
“예, 물론이죠. 열쇠는 제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걸요. 그리고 오늘은 비서실에서 나간 적이 없어요.”

“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강 형사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며 일어섰다. 사실 유자차를 바꿔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설령 유자차에 독극물이 있다 해도 그것이 김묘숙만 죽일 수는 없을 뿐 아니라 김묘숙이 죽은 것은 유자차와 인삼캡슐을 먹은 뒤 한 시간 반이나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강 형사가 이곳에 온 것은 티끌만한 무슨 단서라도 잡을까 해서였다.
“아, 참.”
구연희의 아파트에서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구두를 신다가 강 형사가 다시 말했다.

“봉급이 꽤 많은가 봅니다.”
구 연희는 처음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호화가구들을 빈정대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낯빛이 변했다.
“왜요? 잘사는 것 같아요? 이 가구들은 거의가 이미테이션이랍니다. 싸구려예요.”
“예. 그렇습니까?”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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