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박 기사.”
“예.”
박 기사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여기 와서는 어디 있었지요?”
“저, 천영감님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쭉 말입니까?”
“예, 쭉.”

“네. 됐습니다. 변사장님은 저와 함께 회사로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회사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추 경감은 담배에 불 붙이는 걸 잊은 채 일어났다.
“박 기사는 이사님들을 모셔 드리게.”

변 사장은 이렇게 지시하고, 그 자신은 추 경감의 차를 탔다.
별장이 있는 마석에서 서울로 돌아오며 변사장은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차들이 촌으로 여러 대 들어오면 위화감이 일어난다고 묘숙이가 제 차만 쓰자고 랬었지요. 그렇게 세심한 아이가 자살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자살이라고요?”

강 형사가 앞좌석에서 돌아보며 물었다.
“자살이 아니면 뭐란 말이지요?”
변 사장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저 친구가 항상 저런 식으로 질러 이야길 잘 합니다.”
추 경감이 또 주름투성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하나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데.

“자살이 틀림없어요. 옆방에서 혼자 극약을 먹었을 겁니다.”
“그런 흔적은 현장에 없었습니다. 극약을 먹었는지 어쨌는지, 사인은 부검이 끝나야 알게 됩니다. 사장님은 자살이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라도 있나요?”
“있지요. 사실 묘숙이는 장이사를 좋아했어요.”
“저런, 장 이사님은 미혼인가요?”

추 경감은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변 사장이 불을 붙여 주었다.
“웬걸요? 상처를 하고 지금 외동딸이 중학교 2학년인가, 그렇습니다.”
“뭐 어쨌든 현재는 홀몸이군요?”

“예. 그런데 장이사는 묘숙이를 동료로 좋아하긴 했는데 아내로는 탐탁찮았던가 봅니다. 아마 오늘 점심때도 이런 이야기가 오갔을 거예요.”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예, 틀림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 장 이사님의 태도는 너무 태연하지 않습니까?”
강 형사가 끼여 들었다.

“본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자기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겠지요.”
요령 부득이한 말이었지만 또 그런대로 논리가 성립되기도 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회사는 문을 내렸기 때문에 오히려 현장 보존에 도움이 되었다.
“여기가 우리들이 이사회를 여는 곳이지요.”

변 사장이 널찍한 회의실로 추경감과 강형사를 안내했다.
“이게 그 유자찬가 보지요?”
강 형사가 나무통을 열어 보고 물었다.
“예, 그 옆의 것이 설탕입니다.”

강 형사는 그 두 물건을 챙겨 넣다가 소파 옆에 떨어진 캡슐을 하나 발견했다. 흔히 항생제 같은 것을 넣는 약품 캡슐 같았다.
“어라, 이게 뭐지요?”
“어디, 좀 봅시다.”

변 사장은 캡슐을 받아 들더니 말했다.
“이건 그 인삼캡슐이네요. 오늘 우리들이 갈라 먹은 건데.....”
“그래요? 이 소파엔 누가 앉아 있었죠?”
강 형사가 물었다.
“어, 어. 장 이사 자리로군요.”
“흐음, 그래요.”
장 이사의 오늘 행동은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어울리지 않는 농담이 그랬다. 강형사는 싱긋 웃었다.

“누가 캡슐 하나를 안 드셨다 이런 이야기지요?”
확인이라도 하듯이 변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변 사장님은 아니셨나요?”

“어, 어디요. 저는 약을 잘 못 먹는 사람이라서 약을 들고 한참이나 있다가 묘숙이한테 핀잔을 받고야 먹었을 정도였는걸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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