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형사는 속으로 중얼대는데 추 경감은 놀리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젠 자네에게 그런 모든 것을 가르쳐 줄 때가 된 것도 같네. 물론 가르쳐 준다고 자네가 바로 깨우칠는지는 모르겠지만.”

강 형사는 추 경감을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내가 강 형사 자네보다 더 알고 있는 부분은 20년을 더 산 내 경험뿐이야. 알겠나? 이 친구야.”

강 형사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사태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저......농담이었습니다.”
추 경감은 그 말에 더 대꾸하지 않고 눈가에 잔주름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잘 오셨습니다.”

사장실을 열고 들어가자 변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가워했다.
“모두들 모여 계시는군요. 무슨 일들이십니까?”
추 경감은 방 안을 둘러보고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글쎄, 이분들이......”

장 이사가 거구를 일으키며 말을 꺼냈다. 얼핏 보기에는 흥분한 것 같았지만 사실 그런 눈치는 아니었고 도리어 눈매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이 사람아, 뭐 못 할 일을 한 듯이 그러지 말게.”

변 사장은 정색을 하고 장이사를 나무랐다.
“차근히 말씀해 주시지요.”
추 경감은 자리에 앉으며 분위기를 달랬다.
“예, 그게 말입니다.”
변 사장이 입맛을 쩍 다시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장이사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발신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뜯어 보았더니, 거기서......”
“장 이사 그 편지 좀 줘보세요.”
장 이사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추경감에게 내밀었다. 추 경감은 아무렇지도 않게 편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봉투는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보통의 봉투였다. 소인은 강남 --- 김묘숙과 구연희가 사는 P아파트가 있는 바로 그곳--- 우체국의 소인이었다. 날짜는 어제 날짜. 특이한 것은 받는 이의 주소였다.
신문활자, 아마도 기사제목쯤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크기의 신문활자를 오려 붙여 이루어져 있었다. 

추 경감은 봉투를 열어 종이를 꺼냈다.
“나는 25일 오후 3시 이후 죽는다.”
추 경감은 잠시 멍하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 눈길에는 노기가 서려 있는지 몰랐다.

강 형사가 다가와 어깨 너머로 편지를 바라보았다. 편지지는 역시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편지지였고 글자는 지난번 김 묘숙의 백에서 나왔던 그것과 같은 방식대로 신문활자를 죽 오려 붙여 만든 것이었다. 추 경감은 갑작스럽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데 귀신이니 뭐니 하던 얘기는 뭣니까?”
강 형사가 변 사장을 보며 물었다.
“그거야 묘숙이가......”

“김 박사님이 여기에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변 사장이 말을 하려는데 장 이사가 짜증스럽게 말을 막고 나섰다.
"그러니까 이 편지는 김묘숙 박사에게서 나온 유서 비슷했던 쪽지랑 같다. 뭐 그러니까 김묘숙 박사가 보내 온 것이다 이겁니까?”

강 형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변사장이 고개를 끄덕했다.
“소인은 23일로 되어 있으니까 어쨌든 김박사가 죽기 전에 부칠 수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는군요.”
추 경감은 중얼대듯이 말하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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