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결함?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는 대한민국

자동차 결함에 대한 소비자 권리 보장을 위한 레몬법이 자동차 관리법 등의 하위법으로 구성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4년간 2000건이 넘는 중재 요청 건 중 5건만 교환 또는 환불이 완료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이창환 기자]
자동차 결함에 대한 소비자 권리 보장을 위한 레몬법이 자동차 관리법 등의 하위법으로 구성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4년간 2000건이 넘는 중재 요청 건 중 5건만 교환 또는 환불이 완료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최근 5년간 공식 집계된 자동차 결함신고는 3만 건이 넘고, 그간 리콜 차량은 1200만 대에 이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레몬법이 시행된 이후 4년간 2000건이 넘는 자동차 교환 및 환불 건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단 1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소비자의 불만과 요구가 대기업의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반증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관계 기관은 개선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레몬법 시작부터 전문가들의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현행법의 미비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레몬법 중재 요청 지난 4년간 2021건 중 단 15건에 그쳐
해외에서 징벌적 손해비용 내고 있는 대한민국 완성차업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른바 ‘한국형 레몬법’ 시행 4년이 지났으나, 그간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중재를 통해 이뤄진 교환이나 환불 판정은 단 1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맹 의원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맹 의원은 “(레몬법 관련) 현행법은 하자 발생 시 일반 소비자들이 이를 증명하고 보상받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라면서 “보다 소비자 보상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현행법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1일부터 시작된 레몬법은 앞서서 도입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한국형 레몬법이 제정되던 당시에는 정작 준비가 미흡한 법의 도입을 두고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는 국내 레몬법 도입의 모델이 됐던 미국과 한국의 사정이 달라서다. 

미국과 한국의 레몬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신차 출고 이후 동일한 이상 증상 또는 결함이 반복되는 것을 목격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 요구를 완성차업체에 할 수 있다. 다만 결함으로 의심되는 증상에 대한 입증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이 사뭇 다르다. 

한국과 미국의 레몬법, 같은 듯 다른 이유는

첫째, 미국의 레몬법에 따르면 신차 출고 이후 차량의 이상 증상에 대한 규명 또는 입증 책임이 제조사에 있다. 차량의 이상 증상이 결함이 아니거나, 소비자의 과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의 레몬법은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 두고 있다. 즉 소비자가 자신의 차량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제조사를 이를 판단하는 기관에 증명해 내야 한다. 

둘째, 미국에서는 안전에 직결되는 자동차 관련 결함이나 범죄 의심 사례 등에 대해 완성차업체가 철저한 규명에 나서지 않거나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최대 완성차업체인 현대·기아차가 올해 초부터 미국에서 여러 도시와 복수의 주(州)에 걸쳐 징벌적 집단손해소송을 당한 바 있다. 

이유는 판매한 차량에 차량 도난방지 시스템을 장착하지 않아서인데, 뉴욕시에서는 “미국법상 공공방해와 의무태만 등을 저지르는 등 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어 샌디에고, 볼티모어, 시애틀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징벌적집단소송이 이어진 상황. 외신들은 이를 두고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900만 명의 미국 소비자에게 도난차량 손실금 등 총 2억 달러(약 2600억 원)에 합의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셋째, 미국의 레몬법은 완성차업체에게 강한 제재가 가능하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어떤 제조사도 미국 내에서 발생된 문제에 대해 레몬법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내리거나 보상을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레몬법에 동참하지 않는 제조사가 있다는 사실이 소비자의 마음을 옥죈다. 

위의 중요 세 가지 항목가운데 한국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특히 첫 번째 항목 ‘입증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에 대한 것은 레몬법 적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차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제조사를 상대로 펼치는 것은 이른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유명무실 레몬법 이유? 제조사에 ‘동참’ 요청

제조사보다 차량에 대해 더 상세히 알 리가 없는 소비자로서는 “당신 회사가 만든 차에 문제가 있다”라고 증명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자동차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기에다 법적 다툼으로 갈 경우, 소비자가 긴 싸움 끝에 이겼다하더라도 시간적·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차량 결함을 인정받아 그에 대한 보상만 가능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미국 등 북미나 유럽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끝으로 국내에는 한국형 레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제조·판매사가 존재한다. 2019년 레몬법이 시행됐지만, 정부는 국내외 제조사의 레몬법 동참을 구하는데 긴 시간을 보냈다. 이는 이른바 ‘레몬법’으로 불리는 이 제도가 자동차 관리법의 하위 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에 있어서다. 

즉 자동차관리법 등의 강력한 상위법으로 법을 만들어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와 그 업체에 대해 적용하고 제외되는 제조사가 없도록 해야 하지만, 하위 법으로 구성되면서 구속력이 약해진 것. 이에 국토부는 지난 몇 년간 제조사들의 동참을 독려하며 일대일로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여전히 레몬법에 동참하는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는 나뉜다. 

이런 중에도 국내서 2000건이 넘는 중재 신청 건이 접수됐지만, 이중 판정을 받아낸 것은 단 15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들의 중재를 위한 심사에는 평균 205일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차량에 결함이나 이상 증상이 있음에도 교환이나 환불을 받지 못한 상태로 6개월이 넘는 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최초 시행일로부터 현재까지 총 2102건이 접수돼 2021건이 종결됐고, 판정받은 15건 외에 취하 건도 281건이 있다. 취하 사유별로 교환 126건, 환불 155건이다. 이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중재 심의 중에 업체 측의 합의요청 등으로 소비자가 취하했다는 의미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레몬법이 한국에서 만들어지던 당시부터 문제가 있었다. 상위법으로 구성돼야 할 법이 하위법으로 들어가면서 강제성조차 갖지 못했다”라면서 “법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 관계부처가 제조사의 동참을 요청하러 다닌 것은 이미 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급발진 의심 사고 등을 포함해 다양한 결함 의심 또는 이상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소비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이를 입증해야하는 구조도 돼 있다”라면서 “미국 등 외국처럼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 제조사가 소비자를 무서워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관련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그간 2000건이 넘는 소비자들의 중재 요청에 대해 의미 있는 심의가 이뤄졌다고 본다”라면서 “더 많은 국민들에게 해당 제도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단에 자동차 관련 의심 증상을 접수하시면 소비자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 제조사별로 레몬법 도입시기와 적용시기를 달리하고 있어 차량 구매 시 꼼꼼하게 적용여부를 살필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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