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DJ의 영원한 정치적 기반이자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곳이다. 광주는 5·18민주화항쟁의 아픔과 한이 담긴 곳이며, 이러한 한을 ‘김대중’이라는 청년 사업가를 야당 정치인으로 만들고,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그뿐인가. DJ에 대한 일방적 ‘사랑’이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일종의 ‘원죄의식(?)’ 때문에 ‘노무현’이라는 부산출신 정치인을 과감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했던 곳이 바로 이곳 광주다. 그러나 지금 광주는 무참히 짓밟혀가는 ‘DJ 일가’를 지켜보며, 억눌렀던 감정을 조금씩 표출하기 시작했다. 인사푸대접, 지역현안 사업 소외 등은 참을 수 있었다. 대북특검을 수용할 때만 해도 노대통령의 깊은 ‘속뜻’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DJ의 최대 업적이었던 ‘6·15 남북정상회담’이 사법적 잣대로 무참히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광주’는 또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기자는 가장 먼저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광주의 심장부인 금남로의 ‘양동시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시장민심이 가장 솔직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양동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아주머니인 김양님씨는 “잘 모르것소. 그냥 가슴만 답답허고, DJ가 안됐다는 생각만 드요”라며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이때 김씨 가게에서 생선을 고르던 20대 젊은 새내기 주부로 보이는 김수정(29·주부)씨가 김씨 아주머니의 말을 거든다. “제가 졸업한 학교 학생회에 난리가 났다니깐요. 5·18 한총련 사태가 벌어지고 최근 DJ구속 수사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단순한 지역감정을 넘어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니깐요.”광주에 소재한 대학 학생회에서 활동했다는 김씨는 자신도 지난 대선때 노사모 못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였는데 지금은 투표한 것을 후회한다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광주에서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양동시장은 평일인데도 불구,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이는 시장골목에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주인에게 DJ에 대한 광주민심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도 DJ욕 많이 햇지라. 근디 요즘은 DJ욕하던 사람들도 다 불쌍하다고 한숨 쉰게요. 역사적으로 남을 대통령이 되길 기대했는디 아들들 줄달아 구속되고, DJ까지 북한에다 돈줬다 뭐다 해서 시끄러웅께. 노무현이 그러믄 안되는디. 우리가 죽자사자 밀어줬는디. 시방은 민주당도 없앤다고 하니까, DJ까지 이렇게 되브른 마당에 뭐 할 말이 있것소?”식당주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한 후 DJ의 아들비리 문제를 원망하면서도 DJ와 민주당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시장을 나와 광주의 혼이 깃든 무등산을 찾았다.

평일이어선지 등산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50∼60대 노부부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노무현이 글믄 안되재. DJ가 자기 잘 살자고 북한에다 돈 준거 아니믄. 남북정상회담이 얼마나 우리 민족들의 가슴을 뜨겁게 헛는디. 그걸 사법처리헌다고? DJ가 부정부패 했다믄 우리도 감싸지 못 허는디 그거시 아니잖어요. DJ가 누구여? 그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이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한평생 일해온 사람 아니것소.” 부인과 함께 등산을 온 60대쯤 보이는 한 광주시민은 DJ정부때 가진 서운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대북특검에 관해서 만은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것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등산로에서 음료수 등 먹거리를 팔고 있는 이상두(41·자영업)씨는 신당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열을 올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광주가 어떤 곳이여. DJ보다 노무현에게 더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준 곳이지라. 왜 그랬는가 허믄 우리가 먼저 지역감정 없애자는 것 아니것소? 그랬는디 요즘 민주당에서 뭐 신당 만든다고 하면서 몇몇 정치꾼들이 또 호남의 희생을 요구허고, 영남에 손을 내밀고 있지 않소? 겉으로는 광주가 잠잠혀 보여도 광주사람들 화 많이 났지라. 지 밀어중께 지고향당 만든다고 우리 버리려고 허는디 누가 좋아 허것소. 광주는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곳이지라.”이씨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민주당내 신당창당에 대해 반대입장을 확고히 밝혔다. 정통적 지지세력인 호남을 멀리해 영남표를 얻으려는 일부 정치세력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기자는 민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이 지역 신문기자를 만났다. 광주지역의 유력 일간지 소속의 이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해 최근 대북특검 수사 등에 따른 광주민심을 이렇게 진단했다.

“광주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이죠. 또 DJ의 의중을 말로 듣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곳이지요. 지난 국민경선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냈던 것도 DJ의 마지막 숙원사업이 지역감정 해소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산출신인 그를 당당히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고, 그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낸 거죠. 취임초기 인사문제로 호남소외론 등의 말이 나왔을 때만 해도 광주사람들은 입을 다물었어요. 자칫 지역주의로 몰릴까봐. 굵직굵직한 지역현안 사업이 외면될 때도 광주는 조용했어요. 노대통령이 알아서 잘할거라 믿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관련해 DJ사람들이 하나둘씩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민심이 점점 흉흉해지고 있어요. 그뿐인가요? 민주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호남탈피를 외치고 있잖아요. 속된 말로 왜 항상 DJ 때문이고, 호남 때문이냐 이겁니다. 그것도 노무현 정부에서…” “지역주의도 아니고 DJ를 옹호해서도 아닌 기대를 저버렸다는 실망감과 배신감에 대한 분노때문”이라고 이 기자는 광주민심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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