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고 이병철 회장이 64년 한국비료를 야심차게 설립하며 시작됐다. 당시 삼성은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연산 33만t)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그러나 66년 9월 삼성은 한비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에 휘말린다. 사카린 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이로 인해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며 67년 10월, 국가에 헌납됐다.삼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비 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은 그룹을 존폐위기로까지 몰고 간 중대한 역사 기록으로 남고 있다. 한비에 큰 미련을 갖고 있던 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 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했다.사카린 사건은 삼성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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