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 “내가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공모했던 컨셉”삼성전자 “아이디어 유사 … 확인 후 입장 밝힐 것”핸드폰에서 음악이 나오고 두 젊은이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런데 함께 어우러진 춤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 춤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내보내고 있는 핸드폰 단말기 ‘애니콜’의 광고 장면이다. 이 광고는 가수 ‘세븐’의 현란한 춤솜씨가 압권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광고의 아이디어가 삼성과 관계없는 일반인의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게다가 삼성이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채 광고를 제작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이 광고는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먼저 두 인물이 벌이는 춤 대결이 볼만하고 장소가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종격투기의 격투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춤 대결 도중 공중에 띄워진 채 댄스 음악이 흐르는 애니콜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그동안 젊은 감각을 살리는데 주력해온 애니콜 광고답다는 게 업계의 반응.그러나 정작 광고 컨셉의 주인은 삼성이나 광고제작사가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송 작가 준비를 하고 있는 정대철(25)씨가 의혹을 제기한 주인공이다.정씨는 이 광고 컨셉을 잡은 것은 자신이라며 삼성에 사실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씨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월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위 광고 컨셉을 ‘응모’했다. 응모 범위는 한정된 것이 없었으며 대가가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삼성전자 홈페이지 DB에 입력된 정씨의 아이디어는 지금의 광고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했다. 정씨는 광고 배경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잡고 춤 대결의 주인공들을 일반 젊은이로 택했다. 이외에 두 팀이 춤 대결을 벌이면서 핸드폰을 공중에 띄우자 핸드폰에서 큰 소리로 음악이 나온다는 구성은 같다.정씨가 생각한 이 컨셉은 이동통신 단말기의 앞선 기능들 가운데 ‘화음’에 주목한 것이다. 정씨에 따르면 컬러폰의 시대가 지난지 이미 오래고 동영상 전송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화음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같은 컨셉을 잡았다.

정씨는 자신의 응모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6월말 문제의 삼성전자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부사항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제공한 컨셉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정씨는 이때 불쾌감이 들었다고 했다. 광고 내용상 자신의 아이디어가 분명해 보임에도 삼성으로부터 어떠한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정씨는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는 생각에 삼성전자 본사를 방문했으나 삼성측으로부터 명쾌한 해명을 듣지 못한 채 번번이 물러나야 했다. 정씨에 따르면 누구 하나 책임 있게 답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삼성의 태도가 무성의하다고 느낀 정씨는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에 이른다. 정씨는 본격적인 1인 시위에 앞서 본사 내·외부 벽 등에 ‘이건희 씨의 천재 만들기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천재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이 글은 천재론의 예로 자주 등장하는 빌 게이츠의 허구성, 구본무 회장의 CEO육성론의 상대적 효율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마지막으로 글의 말미에 정씨는 ‘사카린 먹고 아이디어 훔치는 삼성’이라며 고 이병철 창업주 시절 사카린 사건을 들추어내기도 했다.

오너의 경영론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글이, 그것도 본관에서 버젓이 공개되자 삼성은 발칵 뒤집혔다. 일부 직원들이 비방문을 떼러 다니느라 북새통이 연출됐다.정대철씨의 행동에 삼성은 곧바로 반응했다. 정씨의 광고 아이디어를 접수한 사실에서부터 광고 제작 시기 등 정씨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정씨에 따르면 삼성은 정씨가 보낸 응모를 자체 DB에 보관하고 있었으며 부서 직원은 이를 알고 있었다.문제는 과연 삼성이 정씨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느냐 여부. 삼성은 이에 대해 두 개의 모순된 답변을 늘어놓았다. 첫 번째는 고객의 응모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지난 2월 정씨에게 보낸 아이디어를 상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의 이메일 답장이다. 이 부분은 정씨가 주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두 번째는 정씨의 아이디어를 보고 받지 못했다는 답변이다.

한쪽은 보고를 했다고 하고 한쪽은 이를 부인하는 것.삼성은 자체 조사를 통해 진상을 가리고 이를 정씨에게 통보하기로 하며 일을 마무리지었다.정씨에 따르면 정씨는 본격적인 1인 시위를 하기 앞서 삼성이 성의를 보여와 시위계획을 접었다. 그의 계획이란 본관 앞에서 ‘사카린 먹고 아이디어 훔치는 삼성’이라는 피켓을 걸치고 애니콜 단말기를 이리저리 발로 찬다는 것.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정씨가 삼성에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 삼성이 정씨의 광고 아이디어를 채택했다면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과 자신에게 허위 답장 메일을 보낸 것이라면 정식으로 사과하라는 것이다.정씨의 주장에 대해 삼성측은 “(정대철씨의) 아이디어와 광고 컨셉이 매우 유사한 것은 사실”이라며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어 조만간 정씨에게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