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평화적 해결막는 ‘반핵’없는 ‘반전’ 위험경재적으로 열리는 상반된 시위들

6월 들어서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북한핵문제를 둘러싸고 좌·우파 세력이 경쟁적으로 개최한 대규모 시위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여학생범국민대책회의와 통일연대 등 좌파들이 주최한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 1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6월 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먼저 열려 대규모 반전시위로 이어졌다. 이 생사에 뒤이어 그 이튿날부터 서울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과 6·15공동선언기념대회는 성격은 좀 다르지만 반전을 슬로건으로 내건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이들 행사에 비해 보수계 지도자들이 21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주최한 대규모 ‘반핵반김 자유통일국민대회’는 완전히 성격이 반대되는 집회였다.

이 행사는 같은 장소에서 금년 3·1절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대규모 반북 집회였다. 두 행사 간에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시위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전에 열렸기 때문에 주한미군철수반대에 주안점이 있었던데 비해 두번째 시위는 6·25동란 53주년을 맞아 개최된 탓으로 북한 당국의 남침규탄과 북핵 반대에 초점이 있었던 점이다. 두 집회는 한국의 우파세력이 작년 말 촛불시위를 계기로 거세게 불기 시작한 좌파바람에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행동으로 나선 ‘반격작전’이어서 앞으로 더욱 첨예화할 좌우대립을 예고하는 것이다.

반전을 위장한 반미운동

북한문제는 이처럼 엉뚱하게도 우리 국론을 ‘반전’과 ‘반핵’으로 양분시켜 국내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원래 반핵과 반전은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평화운동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의 좌파들은 반핵은 쑥 빼고 반전만 외치고 있다. 그들이 내건 반전 슬로건은 북한의 6·25남침을 규탄하거나 그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반전이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전쟁 반대에 이은 대북군사행동반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반전을 위장한 친북반미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북한핵사태로 빚어진 한반도위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북한 핵무기개발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흥정용이든 실전용이든 마찬가지이다. 일부 국내좌파들은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은 미국이 경수로건설을 지연하는 등 제네바협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북측을 옹호하고 있지만 북한 핵무기 개발을 합리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현재 북한이 먼저 핵포기를 선언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공갈로 재미를 보면 앞으로 또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체 조선민족에게 고함’의 목표

반전론자들이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들은 당연히 북한 핵을 먼저 반대하고, 그 다음으로 미국의 이른바 ‘추가적 조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추가적 조치의 내용이 될 수 있는 미국의 군사력사용은 물론이고 대북 경제봉쇄와 외교적 제재까지 반대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협상지렛대의 완전한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북핵문제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극히 무책임한 말로 시간을 끌다가 임기를 끝낸 김대중정권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지금 좌파들은 노무현정권에 대해서도 김정권과 같은 정책을 펴라고 요구함으로써 손발을 묶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북한이 대화를 통한 핵문제해결에 불응할 경우에는 결국 북한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만약 남한에서 좌·우나 진보·보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국민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북핵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연일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북측은 ‘미국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추종세력’의 책동에 의한 어용데모라고 비난하겠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지만 남한여론의 추이도 이에 못지 않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금 엉뚱하게도 남북한의 전체 민족이 ‘반전반미성전’에 나설 것을 선동하는 ‘전체 조선민족에게 고함’이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연일 대남선동에 나서고 있다.

이 담화는 ‘조선사람’이라면 어디에 살든 북측의 위대한 선군정치와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을 적극 환영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우리의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다.그런 점에서 지난 5월 26일 이른바 ‘열린보수’와 ‘열린 진보’를 자부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반핵과 반전’을 동시에 주장한 것이나 지난 6월 8일 한일 지식인 200여명이 북한을 ‘이라크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반핵’도 동시에 요구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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