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럽던 유상부 전회장 퇴임후 포스코 관련행보 줄이어 ‘자기사람’ 이구택회장 앞세워 경영 참여하나 재계 관심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박태준 명예회장(TJ)의 대 포스코 영향력이 다시 증대되고 있다는 소문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0년 DJP연대 와해 후 DJ정부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TJ가 노무현 정부 출범과 유상부 전회장 퇴진 이후 잇따라 포스코 관련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 나아가 최근에는 TJ가 이구택 회장을 통해 사실상 포스코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같은 소문의 배경에는 올해 초 TJ가 중국정부의 국무원 직속 발전연구중심 고문에 임명되면서 ‘동북아 경제협력권’ 창설을 추진중인 현정부가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TJ에게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는 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포스코는 내 아이와 같다”며 포스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 TJ의 포스코에 대한 영향력 증대 움직임을 눈감아 주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TJ, 포스코 떠나서도 배후서 영향력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고 올해 들어서도 1∼2월 연속 목표치를 상회하는 영업실적을 올리는 등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유 전회장이 주총을 앞두고 돌연 자진사퇴한 것도 이와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TJ의 대 포스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유 전회장을 사퇴케 했다는 것은 포스코를 음해하기 위한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며 “TJ는 포스코의 명예회장으로서 경영에 직접 관련이 없는 그룹 대외적인 일에만 관여할 뿐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도, 또 관여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포스코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TJ가 지난 92년 포항제철(현 포스코)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지난 92년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으로 일할 당시에도 포스코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역대 포스코 회장도 사실상 ‘자신의 사람’으로 임명해 왔다. 실제로 TJ 이후 현 이구택 회장까지, 5명의 역대 회장 가운데 김영삼 전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김만제 전경제부총리를 제외한 황경로, 정명식, 유상부 전회장과 이구택 회장이 TJ의 직·간접적인 엄호 아래 있던 사람들이다. 특히 황경로 전회장과 유상부 전회장은 박득표 포스코건설 회장과 이대공 포스코 교육재단이사장 등과 함께 ‘TJ 4인방’으로 불렸던 TJ의 핵심 가신 출신이다. 한마디로 포스코에서의 TJ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TJ, YS에 뺨맞고 DJ서 부활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철강신화’로 포스코 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던 TJ에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온다. 원인은 지난 92년 12월 대선에서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당시 김영삼 후보의 지지를 거부했다는 것. 이에 92년 10월 포항제철 회장직에서 물러나 사법처리 위기 속에 도일(渡日)하는 등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고초는 YS정권이 끝나는 97년까지 계속된다. 이후 1년여간 황경로, 정명식 회장의 조정기를 거쳐 YS정권의 핵심 인물이던 김만제 전부총리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노골적으로 ‘TJ 색깔 죽이기’에 나서면서 TJ의 포스코에 대한 절대 권력은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TJ 사단으로 평가되는 인물은 과감하게 옷을 벗겨 퇴출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97년 대선에서 민자당을 이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패하고 김대중 당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TJ는 DJ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 포스코의 재장악에 성공한다. 이후 YS정권 당시 퇴출됐던 TJ 사단의 원대복귀와 함께 98년 3월 핵심 가신 중 하나였던 유상부 회장을 취임시켜 친정 체제를 강화한다. 당시 TJ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연계해 DJ정권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면서 DJT연대(김대중-김종필-박태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만큼 막강 권력을 자랑했다.

■“유상부의 연임을 저지하라”

그러나 의원내각제라는 DJP연대의 끈이 끊어지면서 TJ에게 다시 한번 시련이 찾아온다. 이번 시련은 ‘TJ 4인방’의 한 사람으로 TJ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유 전회장이 2001년 5월 타이거풀스 주식 고가매입 사건에 연루되면서 TJ와 유 전회장의 갈등이 심화돼 비롯됐다. 당시 TJ는 ‘포스코 역사상 최대 수치’라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TJ는 와병 등을 이유로 포스코 관련 행사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등 유 전회장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지난 3월 주총을 앞두고는 유 전회장의 연임 움직임과 관련, 반대 입장을 노골화하는 등 연임 반대에 앞장 서 왔다. 때맞춰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영화한 공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주장하며 유 전회장에 대해 옥상옥(屋上屋)이라고 비난하는 등 연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유 전회장은 주총 하루 전날 포스코 회장직에서 자진사퇴해 일선에서 물러나고 당시 사장이던 이구택 회장이 포스코의 새 수장에 올랐다. 이때부터 TJ의 포스코 관련 행보가 줄을 잇는다. 지난 4월 초 광양제철소를 4년 3개월여만에 방문한 것을 비롯해 같은 달 24일 포항공대의 미래형 도서관 ‘청암학술정보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이튿날 포항제철소를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는 등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한 것.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유 전회장 재임기간 동안 포스코와의 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했던 TJ가 그간 끊어졌던 포스코와의 연결고리를 회복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해석까지 내놨던 게 사실이다.

■TJ, 중국정부 고문 맡고 참여정부서 재부활

지난 3월 주총 당시만해도 유 전회장의 연임이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유 전회장은 5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6시그마 등 업무혁신(PI) 프로그램을 도입, 지난해 11조7,290억원 매출에 1조1,010억원이라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올려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민영화된 포스코 지분의 61%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을 만큼 정부와 외부의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유 전회장은 결국 연임의 뜻을 굽히고 말았다. 당시 일부에서는 타이거풀스 사건과 관련, 재판에 계류 중인 유 전회장이 정치권 등 안팎의 견제에 못이겨 사퇴를 결심한 것이라는 소문이 팽배했다. 이후 포스코의 새로운 수장으로 이름을 올린 이구택 회장은 전형적인 실무형 인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TJ의 포스코 영향력 강화와 관련, 정치권이나 정부를 상대로 한 다양한 채널 확보와 향후 그룹에 대한 대외적인 외풍에 대항할 수 있는 중량감있는 거목이 포스코에 필요하게 됐고 그 바람막이로 TJ만한 인물이 없는 만큼 최근 자연스럽게 TJ의 포스코 내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동북아 경제 협력권’ 창설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중국정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중국정부의 고문을 맡고 있는 TJ의 포스코 내 영향력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가 TJ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TJ의 행보와 포스코를 연관시키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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