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불확실성 상당부분 해소 됐어도 국내 경제회복 조짐 안보여참여정부 국정운영 능력 불신에 따른 투자·소비 심리 위축 큰 요인

지난 5월25일,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 위기론의 주범격인 부동산 거품에 대해 적나라한 경고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동산 경기 거품과 거품이 제거됐을 때의 파장, 부동산으로 몰리는 자금 분산의 대안 등 실례를 들어 구체적 현실을 적시한 이 보고서의 결론은 한국 경제가 자칫 일본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는 부동산 경기가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 이같은 보고서를 냈지만 보고서 결론이 부동산으로 인해 경제 기반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일요서울>은 위기론의 전반적인 요소들을 짚어보며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갈팡질팡 경제정책

1930년대. 전세계적으로 사상 유례가 없던 대공황을 맞아 미국은 ‘뉴딜정책’을 추진, 공황을 탈출했다. 대공황을 맞기 전까지 정부의 경제 간섭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인식은 전환되기 시작했다.국내 경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출범 100일을 막 넘어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국내 경제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경제정책의 핵심은 투명성과 일관성, 예측 가능성 등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이 부분에서 국민과 기업에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각 부처간 정책 혼선으로 비롯된 일관성 부족과 그로 인해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경제 상황은 기업들의 투자환경을 급속도로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것. 1/4분기 3.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더니 2/4분기에도 좀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4%대 성장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 됐다.

물론 참여정부는 출범 100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어쩔 수 없는 국내외적 악재 등으로 경제운용에 있어 어려운 점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전쟁, 북한 핵문제, 세계적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위험, 사스(SARS) 등은 참여정부로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악재들이었고 신용카드 부실채권 문제와 일부 부동산 투기는 과거 정책이 잘못되었거나 국민의 도덕적 해이 또는 낮은 금리 수준 등으로 단기적 대책 수립조차 어려운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해소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가 풀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불신과 이에 따른 투자 및 소비심리 위축 등 내부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철도·가스공사 등의 민영화 방침이 백지화되면서 공공 개혁의 후퇴라는 지적을 받았고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시 보여준 참여정부의 대응은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화물연대 집단파업과 최근 조흥은행 매각에서 보여준 정부의 원칙 없는 대응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 받을 만하다.물론 참여정부 5년 가운데 초기 100일이라는 기간은 이에 대한 결과나 평가에 있어 너무 짧은 기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YS와 DJ정부 출범 초기 경제정책에 있어 8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이 위기 불러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국민의 가장 큰 열망 가운데 하나는 집값 안정이었다. 서울 지역의 경우 2001년 12.9%의 상승률을 보이던 집값은 지난해에는 무려 22.5%가 상승했다. 특히 강남은 27.4%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의 꿈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었다.이 같은 현상은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 가운데 하나인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본격화하면서 대전·충청지역의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고 안전진단 권한의 해당 자치구 이전 등의 재건축 규제 완화로 집값 상승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이와 함께 아파트 분양가 역시 평당 3,000만원에 육박하는 등 분양가의 아파트값 견인 현상은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집값 안정 희망도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참여정부는 최근 재건축 후분양, 투기과열지구 대폭 확대, 투기과열지구 내 주상복합아파트·일반아파트 분양권 전매 전면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23 부동산시장 종합 안정대책’을 발표, 집값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일단 이번 대책이 발표된 후 최근 2주 동안 아파트값 상승률이 크게 둔화하는 등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5·23대책 발표 이후 서울 강남권을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에서 거래가 실종되고 일부지역에서는 가격하락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경제연구소와 정부 내에서도 ‘일본식 거품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이후 각종 부동산 관련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마치 정부 정책을 비웃듯 한 달 잠복 후 다시 값이 뛰곤 했다. 이번 정책도 공급문제를 등한시해 공급위축에 따른 집값 급등 가능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향후 공급 확대를 위한 체계적인 대책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부동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부동산 문제는 투기성 자금을 차단하고자하는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 대책에 따라 앞으로 주택시장은 시기적으로나 거래량, 정부의 시장안정의지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과열 양상이 진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카드 부실 아직도 심각

대주주의 증자 참여로 일단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한 카드사들의 부실 역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카드사들의 부실은 올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최근 몇 년간 매년 수천억원대 이익을 올리던 카드업도 사실은 거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 카드 활성화 정책은 소비 자금을 확대해 시중 자금을 원활히 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게 사실. 그러나 무분별한 카드 발급에 따른 신용불량자 속출, 연체급증으로 카드사는 부실을 피할 수 없었다. 카드사의 거품은 얼마전 SK글로벌 사태가 빚어지자 곧 드러났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실이 밝혀지자 SK 그룹 전체로 환매사태가 발생하고 증시의 시한폭탄으로 지목 받아온 카드사의 고수익률 채권이 불똥을 맞았다.카드업계는 총체적인 부실을 유상증자로 탈출하려고 하고 있다. 유상증자가 현금 유입의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상증자가 카드사들의 근본적인 부실요인까지 제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카드채 문제의 근본원인과 해결방안’ 보고서에서 카드발(發) 금융불안이 쉽게 진정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그 근거로 ▲지나치게 큰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자 신용규모▲경기하강기에 급증한 대출서비스 중심의 카드사용▲과거가격산정 방식 MMF 환매구조, 미흡한 채권평가기능 등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먼저 GDP 대비 소비자신용규모(17.6%)가 2001년말 기준 미국(14.6%)과 일본(12.6%)에 비해 너무 높고 카드연체율(30일 이상) 역시 5%대인 미국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지적이다. 또 2000년 하반기부터 경기하강이 시작되자 카드사의 현금대출서비스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경기부진이 지속된다면 대출 규모 비대화와 함께 연체율 상승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카드채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투신권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채권형펀드 가치 역시 급락해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크다.

재계 최대의 화두 ‘SK’

SK사태는 올해 재계를 강타한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SK그룹은 공식적으로 순수 민간기업 3위에 올라 있는 거대 재벌이다. 옛 대우그룹 패망에서 보여지듯 재벌 해체는 국민 경제에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SK는 근본적으로 대우사태와 다르다는 점은 정부와 재계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룹이 해체될 경우 독자생존이 어려운 계열사들과 그에 딸린 협력업체들의 도미노 부도는 피할 길이 없다. 또 채권단의 채권회수가 차질을 빚게 됨은 물론이고 정부가 개입할 경우 공적자금이 투입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채권단과 SK(주)가 글로벌에 대한 출자전환 규모에 합의하고 그룹 해체를 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SK는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존재.

SK사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재벌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앞두고 “경기하강 시점에 악재요소를 도려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경제를 철저한 시장경제로 수술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현 경제시국을 과거 악습을 뿌리뽑는 ‘적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공정위의 시책이 향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국민 개개인으로서는 당장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경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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