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의 분식회계에 검찰의 중형이 구형되고 재벌총수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K(주)의 최태원 회장은 구속된 몸으로 책임과 반성을 최후 진술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손길승 그룹회장도 내게 책임이 있다면서 젊은 임원들은 회사에 돌아갈 수 있게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손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 경영인으로 중형을 구형받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으니 그 개인만의 불행이고 고통인가.재벌은 우리경제 개발시대 기둥이었고 오늘의 풍요한 사회건설의 유공자단이다. 그렇지만 재벌의 축성과정에는 시대적 형벌이 있었고 정치적 사회적 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재벌은 전과(前科)있는 우리경제의 유공자라는 특수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SK 글로벌 사건의 중형은 유공자의 전과에 대한 구형이며 총수의 눈물은 재벌의 과거가 ‘너무나 피곤했었다’는 회한을 웅변하는 것이 아닐까.

회사를 살릴수 있게 선처호소

최태원 회장의 최후 진술은 아주 짧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에 죄송하다는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손길승회장의 최후 진술은 참담하고 비통한 느낌이었다. 한국 3위의 대재벌을 이룩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오너회장과 같은 법정에서 중형을 구형받는 심정이 서글펐음은 당연하다. “선대회장(고 최종현)으로부터 좋은 회사로 키워달라는 유지를 받아 임직원들과 함께 매일 열심히 일했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던 최회장과 토론도 많이 하고 젊은 임원들과 강하고 신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피곤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다.”이 같은 손회장의 진술 속에 SK그룹이 과거의 누적된 피로에다 IMF 이후 캄캄한 터널을 빠져 나오고자 고심하고 번민했음이 느껴진다.

JP모건과의 계약이 잘못되면 사회에 큰 부담이 미칠까 두려워 안전장치를 한 것이 이런 사태를 가져올 줄 몰랐다는 뜻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IMF 이후 출자총액제한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도리가 없었으니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는 해명도 귀에 들린다. 사건에 대한 책임을 두고 최회장과 손회장 간에 장시간 논의했었던 사실도 최후 진술에서 나왔다. 젊은 회장이 감옥에 가고 손회장이 밖에서 회사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 하기로 역할을 분담키로 했었다는 이야기다. 손회장은 다시 SK글로벌을 살려 사회에 공헌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젊은 임원들이 회사로 돌아가야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소버린’기고만장에 그룹의 운명이…

지엄한 법의 심판 앞에 우리네가 할말이 있을 수 없다. 법관의 판결로써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단 한마디 참견한다면 SK그룹은 앞으로도 우리경제에 큰 몫을 담당하며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소망이다. 사실 지나온 세월동안 SK가 보여준 기업 이미지는 대중적 호감에 속했다. 고인이 된 최종현회장의 해박한 국제경제 지식이나 진취적 경영철학이 이코노미스트들의 높은평가를 받아왔다. 그리고 최태원회장은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손회장을 그룹의 얼굴로 추앙하며 겸손한 자세로 경영수업을 쌓고 있었다. 최회장은 자신이 혈통을 승계했기에 당연히 그룹 회장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영능력을 쌓지 않고는 그룹총수가 될 수 없다고 동의할 만큼 순수한 자연인의 심성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가 사건화되었으니 스스로 죄송하다고 사과한 말이 그의 진심일 것이다.

굳이 최회장을 위해 변호한다면 그룹경영의 과거가 괴롭고 험난했었다는 점일 것이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순환출자해야 했고 이 때문에 소유구조는 취약한데도 무거운 지급보증을 서야만 했기 때문이다. SK그룹의 경우 자회사인 SK텔레콤 보다 모기업인 SK(주)의 기업가치가 낮은 기형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시발이었다. 게다가 어처구니 없고 딱하기로는 소버린이라는 어느 투자기관이 고작 1천7백억원의 SK(주) 주식매집으로 국내 3위의 그룹 운명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소버린의 입장이나 성명이 너무도 당당한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법의 심판은 냉혹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전과 있는 유공자’들의 과거를 우리가 억척스럽게 살아온 역사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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