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열사 지배 위한 카드지분 매각계획 수포 가능성‘공신’과 ‘전범’은 종이 한 장 차이. 공신은 국가나 조직의 창업 또는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를 말하는 반면, 전범은 패전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를 말한다. ‘전범’이라는 용어는 얼마전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이 삼성전자를 공격한 데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LG의 오너 일가로 인해 화제가 됐던 ‘전범’이 LG카드에 적용되고 있다. LG카드는 상장 시절만 해도 오너 일가를 막대한 시세차익으로 돈방석에 앉게 해주더니 이제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재계 처음으로 시작한 지주회사체제와 지주회사에서 금융사 지배구도, LG카드 부실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이중 구본무 회장 일가와 LG의 지주회사제와 구씨 일가의 금융사 지배는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LG카드가 구본무 회장 일가에 ‘전범’으로 전락한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문제의 발단은 공정위 시행령 중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시키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LG는 재계에서 가장 먼저 지주회사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지만 금융계열사는 완전한 변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구 회장 일가가 금융계열사를 직접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구도가 돼야 한다.6월말 현재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LG투자증권의 구씨와 허씨 일가의 지분은 7.52%에 불과하다.

LG전자의 지분이 7.17%이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보다 안정적 지분 확보가 필요한 것.이를 위해서는 오너 일가는 LG전자 등 계열사가 보유한 LG투자증권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캐피털리스트의 지분 정보를 제공하는 에퀴터블(www.equitable.co.kr)에 따르면 오너 일가가 이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약 2,450여억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한 상황.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당장 구본무 회장 일가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LG카드 지분 매각이라는 게 에퀴터블의 견해다. 다행히 지난 5월말 현재 구씨 허씨 일가가 보유한 LG카드 지분 평가액이 LG투자증권 지분 매입에 필요한 비용과 맞아떨어졌다.그러나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이 시나리오는 LG카드의 부실로 긴급 수정을 해야 하는 상황. 올 1분기 3,840여억원의 적자를 낸 LG카드의 부실은 대주주의 책임론까지 대두되며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할 판이다.

LG카드 지분을 매각해야 할 판에 오히려 돈을 쏟아 부어야 할 상황이 돼버린 것.이 문제는 구씨와 허씨 일가 공동의 고민거리이기는 하나 구씨에게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당초 LG는 LG투자증권을 구씨가 맡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중에서도 구자경 명예회장 직계인 구본무 구본준 형제 일가의 몫이었다.그러나 LG카드 부실로 대주주들의 증자 참여 문제가 불거지며 구본준 사장이 LG투자증권 지분 상당량을 구태회 구평회 일가에 급히 매각했다. LG에 따르면 LG카드 유상증자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구태회 고문 일가도 LG카드 때문에 출혈이 막심하다. 구태회 고문 등 고 구인회 창업주의 방계는 LG전선을 맡기로 했으나 구본무 일가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LG투자증권 지분을 매입해줬다.

LG카드 지분을 매각해 LG전선 지분을 매입하려던 게 당초의 계획이었으나 구본무 일가의 사정을 차마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 구평회 고문의 장남 구자열 LG전선 사장의 경우도 LG카드 매각자금 중 상당량을 LG투자증권 지분에 사용했다.결국 LG카드가 부실로 전락하며 LG와 구씨 일가의 향후 지배구도를 모두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LG카드가 ‘전범’으로 전락한 것은 이 때문.LG카드의 유동성 문제를 일단 해결하는 것이 LG와 구본무 일가의 당면 과제다. 그만큼 구씨 일가의 금융지배·계열분리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LG카드가 한때 업계 라이벌인 삼성카드를 눌렀다며 희색이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